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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벅지 긁다 떠오른 생각

방통위와 황구(黃狗)의 닮은점

'청와대→교과부→동의대→방통위→청와대'…똥의 연쇄


지난주 토요일엔 장대비가 오시더니, 이번 주말(19일)에도 새벽부터 빗줄기가 쏟아지고 계십니다.
'하늘과 땅 사이 가득한 물줄기.'
제가 4년 전 시원의 감동을 주는 여름비에 시각적으로 붙여본 표현입니다.
그런데 오늘 비는 제게 미식의 기회를 포기하게 하는 걸림돌이 되고 말았습니다.
오후에 늙은 기자 신학림이 일구시는 주말농장 텃밭에서 미디어스 식구들과 맛있는 단고기 잔치가 예약돼 있었는데, 비 때문에 취소됐거든요.
내일이 초복이더군요.
튀김닭이라도 한 마리 배달시켜 먹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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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구


한국사람들이 식용으로 즐기는 개는 황구(黃狗)지요.
이 한자어를 우리말로 풀면 '누렁이'지만, 그 표현에는 한국사람과 황구 사이의 유구하고도 각별한 인연이 온전히 담기지 않습니다.
누렁이가 밍밍한 증류수 언어라면 '똥개'야 말로 톡 쏘는초정리 약수 언어입니다.
똥개는 음식이 될 때 다양한 이름으로 고아지고 국물 안으로 흩어져 새로운 맛으로 우러납니다.
복날에만 먹던 세시(歲時) 음식 시장을 연중 기호식품 시장으로 확장하려는 마케팅 전략에서 '사철탕'이라는 이름이 나왔고,
엽기적인 동남아 보신관광에 열올리는 남근주의 영양학의 사회심리를 일찍이 마케팅 전략에 접목한 게 '보신탕'이라는 이름일 겁니다.

똥개는 자기 똥을 먹는다

초등학교 6학년 때로 기억합니다.
수업시간에 담임 선생님이 퀴즈를 내셨습니다.
"똥개는 한 끼 밥만 주면 여기(전라도 어느 도시입니다)에서 서울까지 갈 수 있다. 왜일까?"
(3초 뒤)
"그거야 자기가 싼 똥을 다시 먹고, 먹은 다음 다시 똥으로 싸고…."
코미디언 배삼룡이 몸을 한 번 비틀거리기만 해도 배꼽을 쥐고 웃던 시절이었지만, 선생님의 자문자답은 도통 재미가 없었습니다.
똥개가 똥을 탐하는 모습은 골목길에서, 심지어 신작로에서도 흔히 보아왔으니까요.
저는 단고기의 고유한 감칠맛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알지 못하지만, 먹는 도중에는 아예 궁금해하지도 않습니다.
오로지 맛에만 집중하는 걸 보면, 저 역시 머릿속에 잔상으로 남은 똥개의 식사 장면이 찜찜하긴 한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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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신태섭 이사 해임 과정서 '똥개'가 떠오르는 이유

방송통신위원회가 어제 신태섭 KBS 이사를 해임했습니다.
방통위는 한사코 신 이사 해임이 아니라 '보궐 이사 추천'이라고 강조했다고 합니다.
신 이사에 대한 억압의 이미지에서 벗어나려는 꼼수로밖에 안 보이는데, 그 꼼수가 새로 임명된 강성철 이사의 폴리페서적 면모만 부각시키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야기 선이 갑자기 빗나가는 것 같죠? 꼭 그런 건 아닙니다.
신 이사의 해임 논리를 들여다 보면 아시게 될 겁니다.
그동안 신 이사의 폭로 내용과 사건 진행 과정을 토대로 정리해 보죠.

정연주 사장 해임 반대에서 자신이 해임당하기까지

1. 신태섭 이사는 이사회의 정연주 사장 해임 결의 움직임에 반대합니다. 공영방송 사장의 독립성 보장이 중요하다고 봤던 겁니다.
2. 교과부 차관이 신 이사의 소속 대학인 동의대의 총장에게 전화를 걸어 "조처를 취하지 않으면 동의대를 감사하겠다"고 협박합니다.
3. 동의대 총장은 신 이사에게 압력을 넣지만 신 이사는 거절합니다.
4. 동의대가 신 이사를 교수직에서 해임합니다. 학교 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고 KBS 이사직을 수행한 게 해임 사유입니다. (사외이사 하는 대학교수들 대부분이 학교 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는 게 현실이므로, 앞으로 교수 사회가 대폭 물갈이되어야 표적 해임이라는 오해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겁니다.)
5. 신 이사가 해임 취소 가처분 신청을 내고, 법원의 결정일을 앞두고 있습니다.
6. 방송통신위원회가 신 이사를 해임합니다. 대학교수여서 이사가 됐는데, 더는 교수가 아니니 이사직도 유지할 수 없다는 논리입니다. (이사 임명에 관한 규정을 무리하게 끌어다 적용했다는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방통위는 해임 권한이 없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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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대 총장이 KBS 이사 해임…똥개 식습관과 닮은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KBS 이사에 대한 실질적 해임권이 동의대 총장에 의해 작동됐다는 점입니다.
방통위 논리대로라면 방통위는 신 이사가 교수직을 상실함에 따라 '하는 수 없이' 이사직에서 해임했기 때문입니다.
공영방송 이사에 대한 해임권이 사립대 총장에게 있는 셈입니다.
대학총장은 신 이사가 이사직을 맡았다고 해임하고,
방통위는 교수에서 해임됐다고 이사에서 해임합니다.
이런 걸 논리학에서는 '순환 논증'이라고 합니다.
논증되어야 할 명제를 논증의 근거로 하는 잘못된 논증이죠.
그리고 동물의 세계에서는 정확하게 황구의 식습관과 일치합니다.

청와대에서 시작해 다시 청와대로 돌아간 사이클

그런데 사립대 총장은 교과부, 다시 말해 정부가 지배합니다.
감사 카드 하나면 충분합니다.
교과부의 업무 가운데 KBS 이사와 관련된 것은 무엇일까요?
과문한 탓인지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교과부 업무 사항이 아니라면 왜 교과부가 KBS 이사 해임 문제에 개입했을까요?
교과부 장차관 임면권을 쥔 사람(대통령)에게까지 생각이 미칠 수밖에 없는 까닭입니다.
청와대의 의중이 연쇄를 일으킨 겁니다.
청와대→교과부→동의대→방통위.
그리고 신 이사 해임의 효과는 다시 청와대로 환원됩니다.
청와대→→→→청와대
똥개 네 마리가 서울 나들이를 한다면 꼭 이런 방식으로 품앗이, 상부상조, 환난규휼하지 않을까요?

내일이 초복입니다.
아니, 단고기는 연중 기호식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