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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글

‘내로남불’을 쓰지 말아야 할 이유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중구 유관순 기념관에서 열린 제104주년 3·1절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했다”고 말함으로써, 일본 극우의 역사 수정주의를 ‘내불남로’의 자학사관으로 수용했다. 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구속영장 청구서에 ‘내로남불’이라는 표현이 들어간 것을 두고 한동안 이런저런 말들이 많았다. 피의사실을 육하원칙에 따라 삼엄하게 기술해야 하는 문서의 성격과 위상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는 건 누구보다 검찰이 잘 알았을 테고, 그런데도 굳이 그걸 사용한 의도쯤은 누구라도 한눈에 알아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한국어와 영어의 혼종으로 그럴듯한 사자성어 꼴을 갖춘 이 신조어의 거침없는 번식력에 정작 눈길을 빼앗겨, 이러다가는 머잖아 헌법 조문에도 들어가는 게 아닐까 하는 열없는 상상까지 하고 말았다.

‘내로남불’은 1996년 당시 신한국당 의원이던 박희태 전 국회의장이 처음 사용했다는 설이 있다. 본인 주장이지만, 사실이라면 일단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성싶다. 일회성 유행을 넘어 언중이 매사에 빗대게 된데다 국가의 공권력을 집행하기 위한 문서에까지 쓰이는 표현을 아무나 창작할 수는 없다. 이 표현이 만연하는 실태를 부정적으로만 볼 일도 아니다. 비유하면, ‘내로남불’은 날 선 검이다. ‘이중잣대’라는 무딘 말로는 어쩌지 못하는 적의 평판을 베면서 비튼다. 그리하여 상징자본의 허위와 이중성을 속 시원히 들출 수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있을까.

문제는 그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데 있다. 저 날 선 검이 내로남불 행태의 사회적 총량을 줄였다면 표현의 총량도 동조화해 줄었을 법한데, 외려 정반대다. ‘내로남불’은 한계효용 체감이 극한에 이른 듯 귀에 물린다. 어쩌면 현실에 만연한 행태가 만연한 표현으로 현상됐다고 보는 게 타당할 수 있다. 이 경우 언어는 실재의 반영에 불과하다. 하지만 거꾸로 언어는 사유와 행동을 강하게 구성하기도 한다. 표현의 ‘정치적 올바름’을 중시하는 태도도 그런 원리를 전제한다. 같은 원리로 망나니 칼춤 같은 표현 남용도 얼마든지 현실의 행태를 부추길 수 있는 것이다.

‘내로남불’은 스스로도 내로남불이다. 애초 가치중립과 거리가 멀다. 다시 검에 비유하면, 한쪽 날은 서슬 퍼렇고 다른 쪽 날은 무늬만 있는 양날 검이다. 양쪽이 서로 공격해도 한쪽은 깊은 자상을 입는데, 반대쪽은 기껏해야 타박상이다. 결과적으로 ‘내타박상너자상’인 셈이다. 승리는 언제나 ‘로맨스’라는 치장 따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쪽에 바쳐진다. 적의 이중성을 베면서 비트는 포즈를 취하면서도 정작 지시 대상의 속성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이 다중모순은, 그 자신이 자주 호명될수록 현실은 더욱 타락하는 불가사의를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열쇠다.

이 모순의 유일한 수혜자는 내로남불을 일삼는 세력이다. 대장동 개발 의혹 사건의 양대 축인 인허가 특혜 의혹과 ‘50억 클럽’ 의혹에 대한 검찰의 수사는 양극화한 지 오래다. 그러면서도 이재명 대표 구속영장에 ‘내로남불’을 쓸 수 있는 건 자신의 내로남불에 굳이 치장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노동계를 내로남불의 폭력·비리 집단으로 모는 행동대장은 한국노총 출신 노동부 장관인데, 건설노조가 ‘월례비’와 위법적인 장시간·위험 작업 요구도 거부하겠다고 선언하자, 이제는 ‘태업’이라고 비난한다. 위법의 장본인인 건설사에는 입을 꾹 다문다.

내로남불은 급기야 도착적 징후를 보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3·1절 기념식에서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했다”고 말해, 일본 극우의 역사 수정주의를 그대로 옮겨왔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그대로 옮겨온 건 아니다. 일본 극우의 수정주의는 주류 사관을 ‘자학사관’이라 공격하며 제국주의 역사를 합리화한다. 윤 대통령은 우리 항일 역사를 ‘자학’함으로써 일본 극우의 반동적 역사관을 수용했다. 내로남불의 주객전도, 즉 ‘내불남로’다.

윤 대통령 연설은 ‘내로남불’의 가장 심각한 폐해가 ‘가치 교란’임을 보여준다. 이를 우리식 수정주의로 둔갑시키는 주류 언론 등 여러 층위의 매개자들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면 우리 사회의 가치 체계는 어디까지 하향평준화할지 확정하기 어렵다. 특히 진보 진영이 적대적 공생관계에 길들고 ‘로맨스’(대의, 윤리, 정치적 올바름)로부터의 일탈에 스스로 너그러워지면 저들의 승리 방정식도 영구히 고착되고 말 것이다. 급한 대로 이를 경계하기 위해, 나는 이번을 끝으로 더는 ‘내로남불’을 쓰지 않기로 한다.

 

※ <한겨레> ‘아침 햇발’에 실린 글입니다.

 

‘내로남불’을 쓰지 말아야 할 이유 [아침 햇발]

안영춘ㅣ논설위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구속영장 청구서에 ‘내로남불’이라는 표현이 들어간 것을 두고 한동안 이런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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