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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글

파업 손배소 ‘지옥’의 발명가들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이 최근 국회 상임위원회를 통과하자, 대기업을 상대로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365일 돌아가며 파업을 벌일 거라는 따위의 망상적 예언이 쏟아지고 있다. 이들 묵시록은 외줄타기나 다름없는 합법파업에서 한발짝만 삐끗해도 파업 노동자를 천문학적인 손해배상의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현행 체계가 불과 30년 전 어름에 만들어진 ‘발명품’이라는 사실을 애써 외면한다.


1989년 8월1일, 대구의 자동차부품회사 ㈜건화. 회사가 말 한마디 없이 상여금을 깎자 노조는 긴급 총회를 열어 해명을 요구했다. 우여곡절 끝에 하루 작업이 중단됐다. 이튿날 회사는 불법파업을 했다며 위원장 등 2명을 해고했다. 이에 노조가 반발해 일주일간 조업 차질이 빚어지자, 이번엔 해고자 2명에게 1795만원의 손배소를 냈다. 1990년 7월2일, 대구지법. 해고는 무효라면서도, 얼떨결에 이뤄진 작업 거부는 냉각기간을 거치지 않은 불법파업이라며 538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복직 포기와 소 취하가 맞교환된 다음, 노조는 구심점을 잃고 와해됐다.

 

이 사건은 누군가의 영감을 자극했다. 그해 10월22일, 노동부 장관 최영철. 전국 근로감독과장회의를 열어 기업들을 대상으로 손배소를 지도하라고 지시했다. 경총과 전경련도 회원사들을 독려했다. 1989년 1건이었던 파업 손배소는 90년 10건, 91년 23건으로 늘었다. 1994년 3월25일, 쟁의행위에 대한 손배를 인정하는 첫 확정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윤영철 대법관 등)은 대표적 악법인 ‘직권중재’ 조항(2006년 폐지)을 어겼다며, 대구 동산의료원 노조 간부 7명에게 5천만원을 배상하도록 했다. 마침내 파업 손배소 지옥(누군가에겐 천국)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정부는 시범조교였다. 대법 판결 직후인 그해 6월 서울과 부산의 지하철 파업에 51억1200만원의 손배소를 내고, 조합비뿐 아니라 노동자들의 부동산, 임금, 퇴직금도 가압류했다. 민간 기업들이 ‘복붙’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노동자들의 목숨까지 압류하는 비극이 줄을 이었다. 노란봉투법이 국회 상임위를 통과한 날, 많은 이들이 20년 전 인물을 호명했다. 두산중공업(당시 회장 박용성)이 청구한 65억원 손배소에 고통받다 2003년 1월9일 분신한 ‘손배·가압류 1호 열사’ 배달호.

 

※ <한겨레> ‘유레카’에 실린 글입니다.

 

[유레카] 파업 손배소 ‘지옥’의 발명가들 / 안영춘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이 최근 국회 상임위원회를 통과하자, 대기업을 상대로 협력업체 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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