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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글

전시 성폭력, 가해자의 시선을 넘어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을 사과하고 피해자들을 위로하는 상징물인 ‘베트남 피에타’(왼쪽). 이 조각상은 아기를 안고 자장가를 부르는 엄마의 형상인데, 주한 일본대사관 맞은편 ‘평화의 소녀상’(오른쪽)을 제작한 김서경·김운성 부부 작가의 작품이다. 강재훈 선임기자

‘존 마크 램자이어’라는 이름이 아주 눈에 설지는 않아 뒤적여봤다. ‘일본 판사들의 승진에 대한 열망이 정치적 판결을 내리게 만드는 통로’라는 그의 연구 결과를 인용한 칼럼(최한수, ‘이제 판사를 선거로 뽑아야 할까’, <한겨레> 2020년 12월 28일)에서 스친 이름이었다. 칼럼을 읽고 나서 제법 공감 가는 분석이라고 여겼던 기억이 난다. 그런 램자이어 교수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계약 매춘부’라고 주장하는 논문을 썼고, 정작 논문의 근거인 ‘매춘 계약서’는 본 적조차 없노라고 뒤늦게 실토했다고 하니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의 일본 판사 사회 분석에 대해서도 신뢰를 접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잠시 난감했다.

램자이어 교수의 위안부 논문이 세계 지성들로부터 호된 비판을 받던 삼일절, ‘한국은 베트남에서의 성폭력 의혹을 인정해야 한다’라는 제목을 단 영국 노동당 소속 국회의원 웨인 데이비드의 기고가 <인디펜던트>에 실렸다. 데이비드 의원은 “한국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사과를 받으려고 수십 년간 노력하면서도, 베트남전에서 한국군의 성폭력 의혹에 관해서는 상반된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군 등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한 여성이 수만 명에 이르며 이 중 12∼13살 어린아이도 있었다”는 주장도 함께 소개했다. 그러나 이 충격적인 주장에 대한 국내의 반응은 무관심과 침묵이 다였다.

뭐라 해도 무관심과 침묵뿐인 한국 반응

베트남전에서 자행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과 성폭력은 상당부분 사실관계가 확인돼 있다. 이에 관한 증언은 희생자 가족과 피해 생존자뿐 아니라 한국군 참전군인 일부한테서도 나왔다. 관련 기록 또한 베트남 문서에는 수도 없이 남아 있고, 미국 기밀문서에까지 등장한다. 1999년 <한겨레>가 국내 언론으로는 처음 이 사실을 보도한 지도 어느덧 20여년이 지났다. 하지만 영국 국회에는 이 문제를 연구하는 모임까지 있다는데, 대한민국 국회에서는 모임은커녕 제대로 된 공론화 기회조차 없었다. 국방부는 민간인 학살과 성폭력 자체를 부인하고 있고, 참전군인 단체들도 일부 ‘전우’들의 증언을 ‘미친 소리’로 치부한다.

물론 대한민국 구성원 전체가 진실에 눈감거나 침묵하고 있는 건 아니다. 전우들한테 ‘배신자’ 소리를 들으면서도 자신들의 만행을 용기 내서 증언한 앞서의 참전군인 일부도 엄연하거니와, 베트남 현지를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자료를 발굴하고 피해자를 인터뷰해 책, 미술작품, 다큐멘터리 영화로 알리는 이들, 피해자들과의 연대 활동에 열심인 이들 또한 한둘이 아니다. 이들은 2018년 시민 모의법정을 열어 피해 생존자들의 증언을 듣고, 대한민국 정부더러 피해에 합당한 배상과 함께 피해자들의 존엄, 명예, 권리를 회복하겠다는 공식 선언을 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여태 묵묵부답이다. 예상됐던 바다.

베트남 피해자들에게 내미는 손길

그런데 베트남 피해자들에게 내미는 손길 가운데 유난히 아픔이 전해지는 손길이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손길이 그렇다. 김복동 할머니(2019년 별세)처럼 생전에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한테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들에게 곡진한 사죄와 연대의 메시지를 보낸 이가 여럿이다. 전시 성폭력 피해자가 다른 전시 성폭력 피해자에게 사죄하는 건 일종의 대속(代贖)인데, 그 의미는 대속에만 머물지 않는다. 마땅히 사죄해야 할 자들이 사죄하지 않는 것에 대한 피해자로서의 준열한 질타이기도 했다. 그것이 가능했던 건 아픔에는 아픔을 알아보는 눈과, 제 아픔을 타자의 아픔으로 흘려보내는 강물 같은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픔의 강물을 서로의 몸으로 공유할 만한 경험이 없더라도 그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닐 것이다. 타자들의 아픔을 미뤄 헤아림으로써 도달할 수 있는 지평도 결코 좁다고 할 수 없다. ‘평화의 소녀상’을 만든 부부 작가가 훗날 ‘베트남 피에타상’까지 만든 건 타자의 ‘보편적 아픔’을 헤아리는 마음으로 형상을 빚는 역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더구나 두 작품에는 형언하기 힘든 동질의 미학적 아픔이 배어나는데, 아마도 둘 사이로 ‘보편적 진실’이 흐르고 있어서일 것이다. 전쟁과 식민의 역사에서 ‘여성’으로 표상되는 사회적 약자는 언제나 죽임당하고 강간당하는 폭력 피해자였다는 엄혹한 진실 말이다.

일본 정부의 사죄, 또 한국 정부의 사죄

같은 맥락에서 보면,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에 아무리 사죄를 요구하더라도 베트남 정부와 피해자들에게 사죄하지 않으면 보편적 진실에 가닿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 반쪽짜리 목소리는 보편적 진실로 무르익어 터져 나오는 당당하고 선명한 외침과는 거리가 멀다. 차라리 벽을 바라보고 웅얼거리는 독백에 가깝다. 진실의 절반을 외면하는 부조리가 국제사회의 여론을 움직일 수 있을 거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 부조리가 영국 국회의원에게만 간파되는 건 아닐 것이다. 일본이 사죄는커녕 터무니없이 사실을 왜곡하고, 램자이어 교수가 이를 저명한 학술지에 퍼 나르는 데에도 어떤 식으로든 길을 터주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일본 판사 사회의 서열주의가 사법정의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 램자이어 교수의 연구를 더는 신뢰하지 못한다. 그의 위안부 논문 탓이다. 이 틈을 비집고 누군가 일본 판사 사회에 서열주의는 존재하지 않고, 사법정의는 이미 초과 달성됐다고 주장하더라도 딱히 반박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 나를 탓할 수 없다면, 일본의 위안부 강제동원에 대한 부인과 사실 왜곡에 헷갈려하는 서구 사람들을 탓해서도 안 된다. 보편적 진실의 절반을 가리면 ‘절반의 진실’이 아니라 ‘전체의 거짓’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크다. 베트남전 피해자들의 아픔을 외면하는 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아픔을 외면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전광훈 목사가 삼일절에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을 옹호하는 망언을 했다. 애써 논거를 들여다보면, 터무니없지만은 않다. 그는 베트남전에서의 한국군 성범죄를 들어, 전시 성폭력의 유구한 보편성을 역설했다. 국가나 군의 조직적인 동원(일본군 강제 위안부)이었는가 아니면 개별 군인들의 일탈 방조(베트남전 성폭력)였는가는 피해자 처지에서 차이로 식별되지 않는다. 전 목사의 망언이 망언인 사정은 그의 시선이 피해자의 시선이 아니라 가해자의 시선이라는 데 있다. 가해자의 시선은 피해자의 아픔을 알아보지 못한다. 전시 성폭력에 대한 우리의 시선 절반이 가해자의 시선이면, 우리는 피해자 모두에게 가해자다.

 

※ <월간 인권연대> 258호(2021년 3월)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