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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란 민주주의’의 경고

뻐꾸기의 탁란 기생을 당한 붉은머리오목눈이가 자기보다 큰 뻐꾸기 새끼에 벌레를 먹이고 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네거리를 붕대처럼 휘감은 지방선거 후보자들의 펼침막을 바라보며, 1번과 2번 기호만 가리는 상상을 해봤다. 두 거대 정당 후보들의 소속을 전혀 분별할 수 없었다. 원칙대로 블라인드 테스트를 하면 면접관이 면접자의 학벌 따위 배경 자원을 알아챌 수 없듯이. 10음절 안팎에서 끝나는 구호들은 개발 지상주의의 정수라 할 만했고, 1번과 2번이 그걸 두고 일합을 겨루는 형세였다. 그러나 두 정당이 때 되면 ‘현명하다’고 칭송하는 유권자들은 잘 안다. 어느 쪽이 개발에 더 유능한지.


그날은 집주인이 별안간 직접 들어와 살겠다 해서 이사할 집을 보러 다니는 길이었다. 1기 새도시 중에 가장 싼 동네라는데도, 1년 반 만에 전셋값이 다락같이 올라 있었다. 그동안 급여 한푼 안 쓰고 모았어도 턱없이 모자랄 판이었다. 희한하게도, 들러본 예닐곱 곳 가운데 주인이 사는 한곳 빼고는 모두 집이 비어 있었다. 중개인에게 물으니 “집주인들이 재계약 청구권을 피하려고 자기가 들어와 살겠다며 세입자를 내보낸 다음 새로 세입자를 구하고 있는 집들”이라고 귀띔했다.

 

한날 마주한 두 장면에서 지방선거의 결과가 미리 그려졌다. 그러고 며칠 뒤, 전국에 나부낀 개발 공약을 합치면 대한민국이 100개라도 남아나지 않을 것 같던 선거가 끝이 났다. 개표 결과는 예상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 개발에 한끗이라도 유능한 쪽이 사실상 전국을 석권했다. 개발의 목적은 집값 상승이고, 그들 말대로 유권자들은 현명했다. 집값 상승을 바라는 이들 가운데 이번 선거를 자신의 부동산 자산관리인 뽑는 것쯤으로 여기지 않은 이가 몇이나 될지 자못 궁금하다.

 

물론 이런 결과를 더불어민주당의 개발주의 경쟁 탓으로 환원하는 건 무리다. 개발 공약은 모든 선거에서 상수였다. 하지만 민주당이 이렇게까지 벌거벗고 뛴 적은 없었다. 개표가 끝나기도 전에 민주당은 “국민 여러분의 엄중한 질책을 겸허히 수용하겠다”고 했다. 나는 저 맥락 없는 ‘겸허함’이 두렵다. ‘임대차 3법’을 만들어 다주택자들이 꼼수를 쓰지 않을 수 없도록 한 것에 겸허하겠다는 건가, ‘김포공항 이전’보다 더욱 막강한 개발 공약을 내세우지 못한 것에 겸허하겠다는 건가.

 

약탈적 지대 추구가 모든 걸 압도하는 현실 앞에서는 겸허하기조차 쉽지 않다. 앞으로 얼마간 선거 결과를 두고 온갖 정치공학적 사후 분석이 쏟아질 테지만, ‘밥 먹으면 배부르다’ 유를 벗어나기 어려울 거라 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실에 매이지 않고 좀 더 미래지향적인 공약으로 승부했다고 해도 결과가 달라졌으리라고 보장할 수 없는 사정도 거기에 있다. 설령 민주당이 승리했다 해도 약자들의 삶이 나아지리라는 보장 또한 없다. 익숙하고 즉자적인 해법은 쓸모를 다했다.

 

5년의 집권 기간부터 돌아볼 일이다. 민주당은 한국 사회가 이 지경까지 내달리는 데 아무런 제동력도 행사하지 않았다. 몇번의 우연한 선거 승리에 취해 거대 양당 기득권 동맹의 성채를 쌓아 올리는 데만 매달렸고, 정치 지형도를 우클릭하는 데 부단히 기여했다. 이번 선거는 민주당만 패한 게 아니다. 정의당을 비롯해 양당 체제 외부 정당은 씨가 말랐다. 풀뿌리 민주주의는 뿌리 들리고, 생활정치의 토대도 무너졌다. 망가진 정치 생태계는 개발주의의 독무대가 됐다. 누가 장본인인가.

 

본디 대의민주주의는 엘리트가 지배하는 과두제적 형태로 일탈할 가능성을 얼마간 품고 있다. 정치 진입 장벽이 높은 탓이다. 그 정도가 심하면 다수 유권자들은 소수 특권세력의 숙주로 전락한다. 뻐꾸기 새끼가 제 새끼들을 둥지 밖으로 떨어뜨린 것도 모르고 열심히 벌레를 물어다 먹이는 어미 딱새처럼. 지금 우리의 대의민주주의는 ‘탁란 민주주의’로 불러야 할 지경이 됐다. 철학자 테오도어 아도르노가 말한 ‘객관적 권력’의 이데올로기가 깊숙이 내면화된 상태이기도 하다.

 

객관적 권력의 울타리 안에서는 싸울수록 객관적 권력의 가치만 공고해진다. 민주당이 그 내부를 낯설게 들여다보지 못한다면, 뻐꾸기 새끼를 먹여 키우는 어미 딱새 처지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역설적으로 희망의 단서는 개발 공약 열기에 반비례한 역대 최저 투표율에 있다. ‘투표 거부’ 의지를 읽어내야 한다. 그런 다음, 지난 5년 동안 외면한 약자들의 간절한 요청을 되새겨보기 바란다.

 

※ <한겨레> ‘아침 햇발’에 실린 글입니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45488.html

 

[아침 햇발] ‘탁란 민주주의’의 경고

안영춘 | 논설위원 네거리를 붕대처럼 휘감은 지방선거 후보자들의 펼침막을 바라보며, 1번과 2번 기호만 가리는 상상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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