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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PD수첩'을 진짜 겁내는 이유

엄격한 규범 앞에 맹훈련…최강 저널리즘 전문집단 될 수도
 
 미디어스 안영춘 기자  jona01@mediaus.co.kr 
 
 
내가 얼어붙은 논바닥에서 썰매 지친 경험밖에 없으면서 트리플 악셀을 알고, 겨우 자치기 정도 해봤으면서 홀인원을 말할 수 있게 된 건 숫제 김연아와 박세리 덕분이다. 그러나 CJD와 vCJD의 차이를 정확하게 알게 된 건 PD수첩 덕분이 아니다. 4월28일 PD수첩을 봤을 때만 해도 우리는 양쪽의 차이를 잘 몰랐다. 오히려 PD수첩의 어느 번역가와, 그 번역가를 집중취재해온 조·중·동 덕분에 'CJD-vCJD'의 관계가 '아프리카 코끼리-인도 코끼리'의 관계보다는 '개-고양이'의 관계에 더 가깝다는 사실을 매우 '인상 깊게' 알게 됐다.

어느 번역가와, 그 번역가를 집중취재해온 조중동

어느 번역가와, 그 번역가를 집중취재해온 조·중·동 덕분에 알게 된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저널리즘이 얼마나 삼엄한 규범 안에서 이뤄지는 전문적인 작업인지 알게 됐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지상의 가치는 쇠고기의 안전성이 아니라 저널리즘의 규범이다. 5명의 검사가 붙어 특별수사를 벌이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그러나 놓치지 말아야 할 게 있다. 트리플 악셀을 시도하다 엉덩방아를 찧을 수 있고, 홀인원을 시도하다 더블보기를 범할 수도 있듯이, 엄격한 저널리즘 규범을 들이대다 정작 저널리즘의 기본도 못 지킬 수 있다. 어느 번역가와, 그 번역가를 집중취재해온 조·중·동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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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15일 방송된 MBC < PD수첩> 'PD수첩 진실을 왜곡했는가?'

 
 
7월15일 밤 방영된 MBC <PD수첩>은 어느 번역가와, 그 번역가를 집중취재해온 조·중·동 덕분에 큰 관심을 끌었다. 동아일보는 15일치 8면 머릿기사에 '정지민씨, 오늘 MBC '해명방송' 앞두고 다시 반박 글'이라는 부제를 달아 PD수첩 방영을 '예고'했다. 같은 날 중앙일보 6면에는 '"PD수첩, 해명 대신 또 거짓말 가능성"'이라는 '예상평' 중간제목까지 등장했다. (이상하게도 본문에는 관련 내용이 없다.) 조·중·동은 또 16일 아침 일제히 비판성 '리뷰' 기사를 실었다. 논쟁이 '주장-반박-재반박-재재반박'의 순서가 아닌, '주장-반박-(돌연한) 거듭 반박-재반박-(숨돌릴 틈 없는) 재재반박' 순이었다는 점도 흥미롭다.

칼 포퍼의 반증주의보다 엄격한 검증 규범

'예고편'부터 살펴보자. "수사 중인 문제에 대해 방송까지 하면서 또 편집한 것에 불과한 내용을 보도하는 것은 왜곡에 대한 반증이 되지 못 한다."(동아일보 15일치 8면) '왜곡'은 그 어떤 편집으로도 반증할 수 없고, 오로지 모든 취재자료를 다 까봤을 때 검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난 이 수준 높은 규범을 보며 가슴이 뛰는 걸 느꼈다. "'까마귀는 검다'라는 명제를 반증하기 위해 숨어있는 흰 까마귀를 찾아라"라고 말하는 칼 포퍼의 지독한 반증주의는 논리적 수사일 뿐이지만, 이건 구체적 실천강령이다. (홀인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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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일보 15일치 6면


 
"아레사 빈슨의 어머니는 CJD와 vCJD를 헷갈리지 않았다. 그 근거로, 미방영된 어머니 발언 중 '우리는 CJD에 대해, 그리고 vCJD에 대해 알아봐야 했다'거나 '(병원에서) MRI 소견상 CJD가 의심된다고 했다'는 인터뷰가 있다"는 사실도 '폭로'됐다.(중앙일보 15일치 6면) 그녀가 둘의 차이를 알고 있었으므로 절대 vCJD를 CJD로 잘 못 말했을 리 없고, 그녀가 CJD라고 말했으면 그건 오로지 CJD일 뿐이기에, vCJD로 의역하는 것 자체가 '왜곡'이라는 것이다. 3단 논법의 교과서이자 저널리즘의 '직접성' 원칙(가장 직접적인 표현을 써라)의 정언명령이다. (트리플 악셀이다.)

조중동이 들이민 잣대는 부메랑이 될까?

나는 '예고편'에서 나타난 자잘한 자기모순에 대해 따로 언급하지 않으련다. 예를 들어 "취재 자료의 '상당 부분'의 내용을 아는 (내) 입장에서 보면 15일 해명 방송은 핵심적 반박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한 것(동아일보 15일치 8면)에 대해, 같은 논리로 "취재 자료 '전체'를 알지 못하는 한 그런 추정은 근거가 없다"고까지 말하고 싶지 않다. 어느 번역가를 집중취재해온 조·중·동의 기자들은 어떨지 몰라도, 난 그 정도 수준의 무한 규범을 감당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저 시각차로 남겨두자. "PD수첩, 해명 대신 또 거짓말(할) 가능성" 같은 제목(중앙일보 15일치 같은 기사)은 그 근거없는 예단에도 불구하고, 그 번역가가 하지도 않은 말을 교묘히 재구성한 것이기에 그 번역가에게 따질 수 없는 노릇이기도 하거니와, 사진 조작도 마다지 않는 신문에게 더는 기대할 것도 없기에 언급을 삼가겠다.

이제 '리뷰편'으로 넘어가 보자. PD수첩 25일 방송을 본 나로서는 번역가를 집중취재해온 조·중·동의 잣대가 한층 세련되고 심화됐을 거라고 기대했다. PD수첩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풍부하게 취재를 했고 4월28일 보도가 꽤 타당했다는 인상을 줄 수 있도록 '편집'했고, 자신의 '실수'(어느 번역가와 그 번역가를 집중취재해온 조·중·동 표현으로는 '왜곡')에 대해 매우 솔직하게 인정하고 사과하는 듯 비치도록 '연출'했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번역가를 집중취재해온 조·중·동의 리뷰는 기대에 훨씬 못 미쳤다.

나는 내 딸들의 이름을 자주 바꿔 부른다

"이게 왜곡인지 시청자들이 판단해보라"는 PD수첩의 되물음에, 난 왜곡이라고 판단할 마땅한 '사실'과 논거를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번역가를 집중취재해온 조·중·동이 대신 찾아주기를 기대했다. 그런데 'PD수첩, '왜곡' 사과없이 변명 방송'(조선일보 2면)이라는 제목만 있을 뿐, '실수가 아닌 왜곡'이라는 단서를 제시해주지는 않았다. 그러고는 "PD수첩 상황실 대책회의 문건에 나온 전략 그대로"라고만 '지적'하고 있다. 그런데 이 '지적'은 내게 상황실 대책회의가 PD수첩의 신뢰도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는 '느낌'을 강화시켜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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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15일 방송된 MBC PD수첩 'PD수첩 진실을 왜곡했는가?'


 
어느 번역가를 집중취재해온 조·중·동은 왜곡의 근거로 '빈슨씨의 어머니는 CJD와 vCJD를 명확히 구분해 설명했다'는 걸 제시했다. '예고편'의 되풀이다. 그런데 PD수첩 25일 방송에서 빈슨씨의 어머니는 분명히 이렇게 말한다. "우리 딸은 vCJD(인간 광우병)의 가능성이 있었는데 이는 알다시피 CJD(sCJD를 지칭)와는 달랐어요." 'CJD와 vCJD를 명확히 구분했다'는 것과 '자기 딸이 vCJD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는 것 모두 '사실'이 아닌가? 훈장님이 "내가 '바담풍' 해도 넌 '바담풍'"하라고 하면 소년은 어떻게 해야 할까? 난 내 두 딸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지만, 나도 모르게 이름을 바꿔 부르곤 한다. 미안하다, 딸들아. 아빠가 너희들을 왜곡했구나!

'동물학대' 동영상? '광우병 경고'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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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 7월16일치 2면


 
PD수첩 25일 방송은 지난 4월28일 방송과 달리 '다우너'를 '주저앉은 소'로 일관되게 표현했다. 어느 번역가는 일찍이 '다우너'를 '쓰러지는 소'라고 번역하는 게 타당한데, 의도를 가지고 '광우병 의심 소'라고 왜곡했다고 '지적'했고, 어느 번역가를 집중취재해온 조·중·동은 이런 왜곡을 대한미국을 미치게 만든 '광우병 괴담' 또는 'PD수첩 괴담'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나는 '다우너'를 '주저앉은 소'라고 일관되게 번역한 방송분을 봐도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불안감을 도무지 떨칠 수 없다.

휴메인 소사이어티의 동영상이 '동물학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는 이들의 '지적'은 "광우병을 비롯한 식품 안전성 문제를 제기하기 위한 것"이라는 휴메인 소사이어티 관계자의 새로운 진술 앞에서 아무 해명 없이 실종됐다. 대신 '동물보호단체를 인용한 기존 주장만 되풀이했다'거나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진단해줄 수 있는 제3의 전문가의 인터뷰도, 미국의 책임있는 당국자의 해명도 없었다'는 새로운 '지적'이 나온다.(중앙일보 1면) 사진 조작도 서슴지 않는 유력신문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꾸준히 규범의 수준을 높이고 있지 않은가. 주제넘게 조언 하나 하겠다. '동물학대를 보여주기 위한 동영상'이 아닌 것으로 밝혀진 것에 대해 먼저 해명하는 게 설득력을 높일 수 있는 방법, 그것도 아주 손쉬운 방법이라는 것.

쌍팔년 신문 꺼내들고 "올림픽이다" 뒷북?

어느 번역가를 집중취재해온 조·중·동의 16일치 지면에는 매우 뚜렷한 공통점이 있다. 'PD수첩 번역 잘못 시인'(동아일보 1면 제목)을 세 신문 모두 가장 강조했다는 점이다.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다는 듯이. 하지만 난 아무리 봐도 PD수첩이 시인했다는 번역 오류가 낯설지 않다. 이미 MBC와 PD수첩이 직·간접적으로 밝혀온 사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기사란 사안의 흐름과 맥락에 맞춰 새로운 '사실'을 재구성하는 것이라고 나는 배웠다. 또 (시공이) 가까운 사실일수록 기사가치가 커진다고도 배웠다.(근접성) 그런데 이건 쌍팔년 신문 꺼내들고 "우리도 올림픽을 하는구나"라고 반색하는 거 아닌가.

'사실'은 취재 과정에서 '선택'되어진다. 어느 언론학자는 이를 영화감독의 '캐스팅권'에 빗대기도 했는데, 역으로 모든 출연자가 주인공이 되는 영화는 만들 수 없다는 얘기다. '사실'은 '사실'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두 취재될 수 없다. 촬영 필름을 모두 영화에 담지 않듯, 취재된 사실이라고 모두 보도될 수도 없다. 그런데도 어느 번역가와, 그 번역가를 집중취재해온 조·중·동은 한사코 "모든 취재자료를 다 내놓지 않으면 왜곡 은폐 의혹 자체는 여전히 남는다"거나 (휴메인 소사이어티 관계자가 '다우너'는 '광우병 의심소'라고 하는 게 맞고, 유럽에서는 실제 그렇게 부른다고 했음에도) "다우너 증상의 원인이 59가지에 이른다는 걸 언급하지 않은 것도 문제"라는 식의 '지적'을 계속하고 있다. 이쯤되면 "헤라클레스는 거북이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제논의 역설이 떠오르면서, 서서히 짜증이 나려고 한다. 끝없이 버퍼링만 하면 컴퓨터를 끄게 된다.

역시 트리플 악셀에 홀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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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일보 7월16일치 1면


 
26일치 '리뷰편'을 보면, 저널리즘이 얼마나 삼엄한 규범 안에서 이뤄지는 전문적인 작업인지를 일깨워준 조·중·동에게 갈수록 실망감이 커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실망만 하지는 않는다. 한 사람을 끈질기게 취재해 공영방송의 왜곡을 파헤치려는 집요한 기자 정신과, 양(量 )과 크기의 가치에 매달리기 쉬운 유혹을 물리치고 어느 (이름없는) 번역가 한 사람의 입에 최대의 기사가치를 부여하는 놀라운 '균형감각'에 감탄하지 않을 재간이 없다. 어느 번역가를 집중취재해온 조·중·동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역시 트리플 악셀에 홀인원이다. 엉덩방아를 찧든 말든, 더블보기를 범하든 말든.

이번 저널리즘 규범 논쟁의 최대 수혜자는 역설적으로 PD수첩이 될지 모른다. 과문한 탓인지, 한국 언론 역사상 이만큼 엄격한 저널리즘 규범 검증을 거치고 있는 매체나 프로그램을 난 들어보지 못했다. 살아남는다면 PD수첩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고도로 훈련된 저널리즘 전문가 집단이 되어 있을 것이다. (물론 이번 사태를 통해 공포를 내면화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서.)  한국사회도 그런 매체나 프로그램 하나쯤 가지고 있으면 큰 복이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어느 번역가와 그 번역가를 집중취재해온 조·중·동에게도 어떤 식으로든 감사할 일이다. 나는 PD수첩이 나와는 비교할 수 없는 전문가 집단이 될까 심히 두렵다. 조·중·동도 PD수첩에 뒤지고 싶지 않으면 스스로 휘두른 검증의 칼을 똑같이 되돌여 받아야 할 것이다.

※ PD수첩에도 주제넘게 조언 하나. 4월28일 등장했던 '목숨을 걸고 광우병 쇠고기를 먹어야 합니까' 따위 어깨걸이 캡션을 없앤 건 잘 했다. 그런 촌스런 미장센은 이제 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