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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글

설계를 설계하라

지난달 20일 경기도 수원시 경기도청에서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의 경기도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가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설계’는 대장동 사태의 열쇳말이다. 검찰 수사의 길잡이별이 ‘설계’임은 물론이다. 누가, 왜 수익 배분을 그렇게 설계했는지 사법적으로 특정하는 것이 검찰이 가려는 최종 목적지일 것이다. 인물로 치환하면 화천대유 3인방을 비롯한 토건-법조 카르텔을 경유한 뒤에야 나올 ‘윗선’일 것이다. 누구를 가리키는지는 물을 필요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예단을 가진 수사라고 단정하면 그 또한 섣부른 예단이다. 수사의 범주를 제한하다간 외려 성역 논란을 부를 수도 있다. 예단을 가진 수사와 성역 없는 수사는 기실 한끗 차이다.

 

문제는 의도성을 가진 수사인지 여부다. 그러할지 우려하는 시선과 그러하길 기대하는 시선 모두 탄탄한 경험칙에 근거하고 있다. 검찰은 그 우려와 기대 사이의 협곡을 통과해야 한다. 스스로 지은 업보다. 검찰총장이 곧장 정치판에 뛰어들어 대선 후보가 된 건 또 다른 족쇄다. 검찰이 대선을 틀어쥐었다는 관측은 절반만 맞는다. 후보가 피선거권을 상실하는 사태가 아닌 한, 검찰의 영향력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민심 앞에서 복불복이다. 수사의 의도성을 의심받는 순간 맞게 될 역풍은 미리 각오해두는 게 좋다.

 

하물며 ‘설계’는 이제 검찰의 수사 범위를 아득히 넘어서는 무엇이다. 대장동 사태를 거치면서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분배의 원리’가 무엇인지를 암시하는 커다란 메타포가 된 것이다. 한껏 낙관적으로 보면, 설계의 힘이 얼마나 전능한지를 나같이 어쭙잖은 존재도 알게 된 건 적잖은 수확이다. 화천대유가 천문학적 수익을 챙기는 과정을 범죄적 관점으로만 재구성하면, 개발수익 대부분이 민간업자 주머니로 흘러들도록 설계된 우리 사회의 지배적 분배 구조는 영원히 무탈할 거라는 전망도 덤으로 할 수 있게 됐다.

 

대장동 사업을 “단군 이래 최대 부패 비리”라고 규탄해온 국민의힘과 보수언론들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개발이익 국민 환수제’ 공약을 “반시장주의적 발상”이라고 더 큰 목소리로 규탄하는 것도 ‘설계의 메타포’를 통해 보면 모순이 아니다. 얼마든지 예측 가능한 복화술이다. 대장동 사태는 뇌물죄와 배임죄의 단일 사건이어야 하고, 범위를 넓히더라도 이재명 후보가 성남시장 시절 결재한 다른 개발사업으로 한정해야 하며, 설계 또한 범죄적 관점으로만 들여다봐야 토건족의 ‘천년왕국’이 보장된다.

 

“단군 이래 최대 부패 비리 사건”과 “단군 이래 최대 공익 환수 사업” 사이는 까마득해 보이지만, 어느 면에서 둘은 수사학적 대구를 넘어 엑스 염색체와 와이 염색체 하나만 다른 일란성 쌍둥이 같다. 그 이유를 찾자고 5천년 역사를 뒤지거나 환수액 5503억원이 정확한지 검증하는 것은 부질없다. 양쪽은 우리 사회의 지배적 분배 구조 자체를 건드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데칼코마니다. ‘돈 받은 자’(범인)와 ‘장물 나눈 자’(도둑)가 쥐처럼 들끓어도 이 후보의 드높은 자부심을 훼손하지 못하는 사정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대장동 사업의 ‘설계’에 관한 이 후보의 진술이 오락가락하지만, 적어도 그가 수익 배분의 큰 얼개를 제시했거나 수용했을 것으로 보아 마땅하다. 대장동 사업은 성남시 입장에서 입도선매나 선물투자와 다를 바 없게 설계됐다. 중요한 건 목표수익일 뿐, 그 밖의 머니게임에서 토건족끼리 무슨 굿판을 벌이든 신경을 끈다. 대신, 환수한 수익은 시민의 복지를 위해 오롯이 투입한다. 속된 말로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쓰는 것이고, 건조하게 표현해도 행정의 결과주의지만, 이를 설계한 이가 보기에 심히 아름다웠던 걸까.

 

기독교가 말하는 최초의 설계는 천지창조다. 말씀은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왔다. 그러나 위에서 내려다본 풍경과 아래에서의 삶은 다르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고, 피조물은 신의 뜻을 어긴다. 소돔과 고모라의 이야기는 대장동의 메타포가 아닐까. 민주주의는 아래로부터 위로 올라가고, 다 같이 살아갈 만한 세계는 관계망이 아래에서 촘촘히 엮이고 켜켜이 쌓이며 구성돼 간다. 그것이 바로 기초지자체가 지향해야 할 풀뿌리 민주주의다. 한방의 솔루션을 갖고 있다고 과신한 이 후보의 설계는 그런 원리를 거슬렀다.

 

설계의 원리부터 다시 설계해야 기득권 체제를 해체할 온전한 설계도 나올 수 있다. 거기가 바로 이재명 대선의 ‘로두스’일 것이다.

※ <한겨레> ‘아침 햇발’에 실린 글입니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18554.html

 

[아침햇발] 설계를 설계하라 / 안영춘

안영춘 논설위원 ‘설계’는 대장동 사태의 열쇳말이다. 검찰 수사의 길잡이별이 ‘설계’임은 물론이다. 누가, 왜 수익 배분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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