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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벅지 긁다 떠오른 생각

빗소리를 들으며, 모든 지는 것들을 생각합니다

글 숙제가 쌓여 있어 토요일에도 사무실에 나와 앉아 있습니다.
어느덧 저녁으로 접어드는데, 숙제는 좀체 줄어들지 않는군요.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빗소리 듣는 걸 무척 좋아했습니다.
이런 날 포장마차나, 처마 끝에 덧댄 함석지붕 아래서 술을 마시는 게
저같은 우수마발에게는 홍복이겠으나
사무실을 나설 수 없는 제 처지만큼
창 너머 풍경이 멀어지는군요.

저 빗줄기에 떨어지는 운명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전 이 계절을 능소화의 계절로 기억합니다.
능소화는 지기 전에 시들지 않는 꽃입니다.
질 때는 낱낱의 잎으로 지지 않고, 통으로, 온몸으로 집니다.
세상에 능소화가 있으니 그런 사랑도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죽을 때까지 시들지 않는 사랑,
죽음과 함께 새로운 세계로 그 사랑을 이어가는 사랑.

사용자 삽입 이미지

능소화


모든 사는 것들은 그리움의 중력으로 마침내 집니다.
몹시 그립습니다.
그리움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무거워질 때
저도, 제 사랑도, 마침내 이 세상에서 툭 놓여나
어딘지 모를 곳으로
자유낙하를 할 테지요.

창밖에서 조계사의 저녁예불 알리는 범종 소리가 들려오는군요.
중생아.
모든 지는 것들에 대하여 나무아미타불.

아, 다시 글 정진 해야겠습니다.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