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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글

하청노동에 비친 후쿠시마 10년

2013년 도쿄에서 우편집배원으로 정년퇴직한 이케다 미노루는 이듬해 후쿠시마로 갔다. 그곳에서 1년 남짓 도쿄전력의 3차 하청노동자로 후쿠시마 원전 1호기와 주변 지역의 오염 제거 작업에 투입됐다. 43년 집배원 경험으로는 절대 알 수 없던 세계가 그곳에 있었다. 후쿠시마를 떠날 때, 그는 1년 전의 그가 더는 아니었다. 이후 자신이 겪은 일들을 <후쿠시마 하청노동 일지>라는 책으로 펴내고, 탈핵 활동가의 길로 들어섰다.

 

후쿠시마로 떠나기 전 그의 머릿속은 원전 사고 복구에 힘을 보태겠다는 생각과 돈을 벌겠다는 생각이 반반이었다. 그 생각은 현지에서도 절반씩 실현됐다. 후쿠시마를 사람 살 수 있는 곳으로 되돌리는 데 필요하다는 작업을 하긴 했다. 파견회사도 그 일을 시급으로 쳐서 다달이 돈으로 주긴 줬다. 그러나 현장은 과학 대신 주먹구구가 지배했고, 피폭을 무릅쓴 하청노동의 대가는 보이지 않는 손들이 다단계로 떼 갔다.

 

작업에 투입되기 전 이케다와 동료들이 받은 교육은 반나절이 전부였다. 설령 철저히 교육을 받았더라도 현장에서의 쓸모는 별개였다. 보이지 않는 방사능을 온전히 제거할 수는 없었다. 숲과 들과 원전을 제거할 수도 없었다. 제거 작업의 목적은 손 닿는 부분만 수거해 보이지 않게 하는 거나 같았다. 수거의 목적도 흩어져 있던 걸 모아 산처럼 쌓아두기 위한 것일 뿐, 처리 수단이 없기는 사용후핵연료와 다르지 않았다.

 

현장 어디에서도 도쿄전력 직원은 보기 어려웠다. 그러나 ‘투명인간’은 그들이 아니라 하청노동자들이었다. “도쿄전력 직원은 현장 작업원 입장에선 구름 위의 신 같은 존재”여서, 그들 눈엔 현장의 실태도 노동자도 보일 리 없었다. 일하다 다치고 숨지는 것도 이들 투명인간이었다. 이케다는 흰색 보호복을 입은 동료들을 “거인에 맞서 싸우는 흰개미”라고 했고, “앞으로 50년간 대체 몇백만명의 작업원이 필요할까” 물었다.

 

하청노동자가 없으면 원전은 굴릴 수 없을뿐더러 끌 수도 없다. ‘위험의 외주화’는 원전의 변경 불가능한 기본값이다. 도쿄로 돌아온 날 밤, 늙은 하청노동자는 후쿠시마에서 온 전기로 불을 밝힌 화려한 야경에 경악한다. 원전은 공간마저 외주화한다. 서울 야경의 원리가 다르지 않다면, 10주년이 된 후쿠시마 참사는 바다 건너 불구경거리일 수 없다.

※ <한겨레> ‘유레카’로 실린 글입니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86185.html

 

[유레카] 하청노동에 비친 후쿠시마 10년 / 안영춘

2013년 도쿄에서 우편집배원으로 정년퇴직한 이케다 미노루는 이듬해 후쿠시마로 갔다. 그곳에서 1년 남짓 도쿄전력의 3차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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