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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글

조국은 이럴 줄 몰랐을까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적선현대빌딩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단으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며칠 전 큰딸이 지나가듯 말했다. “아빠보다 딸이 너무 안됐어. 나라면 못 견뎠을 거야.” 같은 20대 여성에 대한 연민 때문인지 타고난 품성 때문인지 알 수 없으나, 그녀가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딸과 학벌을 겨룰 위치에 있지 않은 것만은 확실하다. 그녀는 전문대에서 미용을 전공하고 극한노동의 3년 인턴 생활을 거쳐 지금은 주6일을 야근하는 미용 노동자다. 애초 ‘분노’나 ‘허탈’ 같은 감정의 자장 안에도 들지 못해 저러는가 싶어 나대로 가슴 한구석이 먹먹했다.

수도권 대학에 다니는 작은딸은 이 사태에 아예 시큰둥하다. ‘정치 냉담자’라 하기에는 십대 때부터 이런저런 집회를 열심히 쫓아다니던 모습과 전혀 딴판이다. 궁금했으나 묻지는 못한 채, 그저 그녀 주변의 공전 궤도를 따라 하릴없이 돌기만 하고 있다. ‘공교육 체제 안에서의 방임’과 ‘아비 반면교사 삼기’가 교육 방침의 전부였던, 대입 원서도 각자 알아서 쓰도록 하고 사후통보를 받았던 지난 선택에 요즘만큼 확신이 서지 않은 때도 없다.

그녀들 얘기를 굳이 글로 옮기는 건 지금 언론이 재현하는 청년 정서에서 이들이 얼마간 국외자로 보이기 때문이다. 대의되지 못하는 존재를 알리는 것도 내 직업의 소명 가운데 하나라고 믿는다. 자매 사이에도 시각의 결이 미묘하게 다른데, 서울대나 고려대 학생들의 목소리가 이 세대를 과잉대표하는 것은 아닌지 회의가 든다. 비정규직·지방대생·고졸 청년들이 주축인 ‘청년 전태일’의 집회와 현장 목소리를 전한 언론은 손에 꼽을 정도다.

양쪽 주장은 고래와 상어만큼이나 다르다. 서울대와 고려대 학생들은 개인에게(“조국은 사퇴하라”), ‘청년 전태일’은 우리 사회에(“아무리 노력해도 따라잡을 수 없는 출발선에 청년들은 분노한다”)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청년 전태일’의 문제 제기는 학벌 사다리 최상위에 있는 서울대·고려대 학생들에게도 점선 화살표를 날리고 있다. 어느 쪽 주장이 더 타당한지는 논쟁적일지 몰라도, 우리 사회가 둘의 차이에 무관심한 것은 심각한 문제다.

예년보다 조금 긴 여름휴가를 보낼 때만 해도 이런 글을 쓰게 될 줄은 몰랐다. 한국 사회의 과몰입 상태는 생각보다 훨씬 심각했다. 10만 단위에 이른다는 조국 후보자 의혹 보도와 자유한국당의 끝없는 ‘선 의혹 제기, 후 검증 회피’에서는 광기마저 느껴진다. 그렇지만 몇날며칠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쏟아내는 조국 지지자들의 일사불란함에도 기가 질린다. 이 전대미문의 현상을 설명하려면 새로운 학술용어부터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정작 그 일을 수행해야 할 지식인 사회도 과몰입 상태에서 예외가 아니다. 근래 부쩍 늘어난 그쪽 페친들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글도 온통 조국 얘기뿐이다. 표현의 이지적인 면은 여전하지만, 행간에서는 전에 없는 격정이 배어난다. 조국 후보자는 모세의 기적처럼 진보적 지식인 사회마저 갈라놓았다. 입장은 선명한데 차이의 디테일은 흐릿하다. 담론은 드물고 독백은 흔한데, 지식인 특유의 꾸밈새로 독백의 속내조차 모호하다.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도대체 조국이 뭐라고?’ 냉소가 아니다. 지식인들이 소명의식으로 답을 찾아야 할 문제다. 나는 이 사태가 우리 사회의 인문사회학적 역량을, 나아가 지식인의 윤리적 역량을 시험대에 올려놓았다고 본다. 답을 찾기 위해 ‘조국학’이라는 종합학문 성격의 학술 분과를 상상해보기도 한다. 개론서 첫 장은 이런 질문으로 시작하면 좋겠다. ‘조국은 이럴 줄 몰랐을까?’ 저자들이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해야 한다.

정답은 십중팔구 ‘몰랐다’가 아닐까. 여기에서 ‘몰랐다’는 중의적인 맥락으로 파악해야 한다. 온갖 의혹에 대해 “사전에 몰랐다”는 뜻과 “그땐 문제가 될 줄 몰랐다”이다. 검찰 수사가 아닌 다음에야 방점은 후자에 찍힌다. 중요한 건 정답 풀이 과정이다. 조국 후보자는 자신의 이너서클에서만 활동하는 또 하나의 조국을, 그 도플갱어의 존재 사실을 몰랐던 것이리라.

어디 조국 한 사람뿐이겠는가. 있는 줄도 몰랐던 내 안의 타자를 발견하고 응시하는, 그리하여 청년 전태일들을 벗이 아닌 피붙이로 여기는 윤리학, ‘조국학’은 그런 학문이 되었으면 좋겠다. 개론서는 나도 읽고, 내 딸들에게도 권하겠다.

 

※ <한겨레> ‘아침 햇발’에 실린 글입니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908271.html

 

[아침 햇발] 조국은 이럴 줄 몰랐을까 / 안영춘

안영춘논설위원 며칠 전 큰딸이 지나가듯 말했다. “아빠보다 딸이 너무 안됐어. 나라면 못 견뎠을 거야.” 같은 20대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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