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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글

마르틴 루터가 유튜버가 된다면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1483~1546)는 당대 최고의 저술가이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베스트셀러 작가였다. 바이마르판 <루터 전집>은 127권에 이르고, 그의 책들은 1500~1540년 출간된 독일 전체 출판물 부수의 3분의 1을 차지했을 정도다.

그러나 저 놀라운 수치들은 루터의 ‘개인기’로만 달성된 게 아니다. 한 세대 전 구텐베르크가 활판인쇄술을 발명하지 못했다면 그만한 분량의 책을 공급할 수 없었을 것이다. 루터는 활판인쇄술을 “신이 내려주신 최대의 은총”이라고 했다. 수요 부분도 은혜로웠다. 당시 독일 문맹률은 95%나 됐지만, 그의 ‘사이다 발언’이 입소문을 타면서 책도 날개 돋친 듯 팔렸다.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까지 소 한 마리 값을 치르고 책을 샀고, 읽을 줄 아는 사람에게 부탁해 여럿이 함께 들었다.

루터는 역사적 전환기에 신기술을 제대로 활용할 줄 아는 빼어난 콘텐츠 생산자였다. 그런 면에서 그에겐 ‘플랫폼 혁명기’라는 지금이 여러모로 조건이 나은지도 모른다. 입소문(디지털 바이럴)은 빛의 속도만큼 빨라졌다. 유튜브는 소 한 마리 값은커녕 대놓고 공짜다. 사람들은 굳이 한데 모이지 않고도 무한대의 동시 접속으로 영상을 본다. 심지어 문맹도 볼 수 있다.

루터가 “유튜브는 신이 내려주신 최대의 은총”이라고 외치며 유튜버로 변신하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영민한 그는 요즘 가장 뜨겁게 맞붙은 ‘티브이 홍카콜라’와 ‘알릴레오’부터 참조할 것이다. ‘95개조 반박문’을 내걸며 목숨 걸고 교회의 혹세무민과 맞서던 때가 떠올라 흥분과 기대에 들뜰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상태는 얼마 가지 못해 의문과 회의로 바뀔지도 모른다.

왜 저들 대부분은 본질 대신 가십에 매달려 ‘입의 전쟁’을 벌일까. 왜 진실의 말보다 가짜뉴스가 빛의 속도로 입소문을 탈까. 문맹률 95% 사회는 귀로라도 읽으려 했는데, 문맹률 0% 사회는 왜 읽지 않고 보려고만 할까.

다음 장면은 루터가 지금은 ‘진실의 문맹시대’라는 다소 성급한 결론을 내린 뒤 이 땅을 떠나는 것이다. “내일 세상이 멸망하더라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과 함께. 한국에선 그 말을 스피노자가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는 사실도 까맣게 모르는 채.(실제로는 ‘루터 설’과 ‘스피노자 설’이 있는데, 정설을 입증할 수 있는 관련 기록은 발견되지 않았다.)

※ <한겨레> 2019년 1월10일치 ‘유레카’로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