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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글

하이브리드 십자가 전쟁

 

‘하이브리드’는 미래학자들이 단골로 입에 올리는 개념이지만, 한국에서의 실상은 미래적인 것과 거리가 멀다. 오히려 과거로 퇴행하는 이들의 활용 양상이 도드라진다. 현대자동차 쏘나타 하이브리드의 기술력은 “북한 인권 외면하고 동성애 옹호하는 인권위 해체하라”고 외치는 ‘애국 기독교’ 단체들의 하이브리드한 명제 만들기 능력을 따라가지 못한다. 서울시민인권헌장 공청회장에서 성소수자를 향해 “당신, 세월호 주체지?”라고 4차원 공격을 가하는 것도 하이브리드한 저들이기에 가능하다.

그러니 ‘북한 인권과 동성애’, ‘세월호 참사와 성소수자 인권’의 함수관계에 합리성의 잣대를 갖다 대봐야 영화 <인터스텔라>를 뉴턴의 고전 물리학으로 접근하는 것만큼이나 요령부득이다. 저들의 담론은 논리 영역의 외부에서 구성된다. 그렇다고 저들을 무작정 배척하는 것도 능사는 아닐 것이다.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출몰해 뭐든 “반대”부터 외치지만, 그 장면들을 이어 붙여서 보면 모종의 계통과 일관성의 징후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컷과 컷 사이에 튀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면 더욱 그렇다.

한국 기독교의 유별난 보수성은 그동안 역사적 맥락에서 짚어지곤 했다. 구한말 미국에서 전파된 기독교가 애초 근본주의 성향이 강한 종파인데다, 분단 과정에서 북 정권의 탄압을 받고 월남한 반공 기독교인들이 남한 기독교계의 주류를 형성했고, 다시 박정희 정권을 거치며 자본과 함께 급성장해 철저히 기득권을 대변하는 세력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장시대는 끝났다. 저들의 행태를 과거 기독교로 설명하는 것도 어쩐지 힘에 부쳐 보인다. 그들은 과거와 깊은 관련이 없을지도 모른다.

북한 정권 반대, 세월호 특별법 반대, 성소수자 차별 금지 반대…. 올해 저들이 목소리를 높인 이슈들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문자로 보면 ‘반대’이지만, 그 이면의 실재는 ‘혐오’다. 북한 정권이나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는 과거로부터 전승되었을지 몰라도, 무구한 세월호 피해자들에 대한 혐오 감정은 다분히 돌출적이다. 그러나 저들에게는 세 이슈가 하나의 계열체로 인식되고 있다. 대상의 성격으로 보면 ‘북한 정권 반대’가 오히려 예외적이다. 다른 두 이슈는 대상이 ‘약자/소수자’라는 점에서 같다.

아무리 완고한 보수 종파라고 해도, 약자/소수자 혐오 감정은 기독교의 본질과 닿지 않는다. 그것은 다름 아닌 ‘파시즘’의 본질적 속성이다. 파시즘의 이런 속성을 뒷받침하는 이론은 우생학과 사회진화론이며, 파시즘 안에서 약자/소수자 혐오와 강자/권력자 숭배가 동전의 양면관계를 이루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저들의 행태는 파시즘의 이런 속성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저들이 세월호 유가족들을 혐오하는 것도 자신들이 숭배하는 강자/권력자에게 유가족들이 맞서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저들에게 종교는 내면화된 신앙이 아니다. 상징이자 매개다. 성찰은 없고, 혐오와 열광만 난무한다. 그럴수록 종교는 근본주의로 기울어 파시즘 성격을 띠게 된다. 이를테면 근본주의는 종교적 파시즘이고, 파시즘은 세속의 근본주의다. 그런데 근본주의든 파시즘이든 행동대원들은 강자/권력자가 아니다. 강자/권력자는 현장에 출몰하는 법이 없다. 행동대원들은 자신의 숭배 대상인 강자/권력자를 위해 오늘도 자신보다 조금 약하거나 소수인 이들을 혐오하며 하이브리드한 ‘십자가전쟁’을 벌인다.

* <한국방송대학보>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