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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글

어느 종군 여기자의 일관성

얼마 전 <한겨레>에 ‘‘기자 이진숙’으로 돌아오라’라는 제목의 칼럼이 실렸다. 이진숙 <문화방송>(MBC) 홍보국장이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의 파업에 연일 비난성 브리핑을 내놓는 행태를 보며, 한때 바그다드 전선을 누비던 종군기자 이진숙이 변했다고 꼬집고 있었다. 그리고 며칠 뒤, MBC 기자회가 그녀를 회원에서 제명했다. 기자회에서 제명됐다고 기자직을 박탈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종의 명예형을 당함으로써 기자 이진숙으로 돌아올 수 있는 상징적 경로가 차단된 셈이다.

그 칼럼에서 재미있었던 대목은 그녀가 “예전의 이진숙과 지금의 이진숙은 같다”고 자평했다는 부분이다. 그녀는 그 근거로 자신은 “사실이 아니면 믿지 않고, 거짓이 사실로 둔갑해 돌아다니는 것을 참을 수 없다”는 점을 들었다. 노조에서 제기한 의혹이 사실이 아니기에 자신이 성전을 치르고 있다는 얘기다. 그녀의 논리와 내 논리의 입구는 다르지만, 내가 도달한 결론은 곧 그녀의 결론이다. “그녀의 일관성에는 문제가 없다. 그녀는 예나 지금이나 신실하고 능력 있는 직능인이다.”

기자 이진숙을 일약 방송 저널리즘의 디바로 만든 건 “바그다드에서 이진숙입니다”라는 클로징 코멘트다. 그때 그녀는 그곳에 끝까지 있었다. 그녀의 담대한 현장주의는 2003년 <MBC> 보도국의 최대 성취였는지도 모른다. 그녀 이름 앞에는 지금도 ‘전쟁의 참상을 알린’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하지만 난 당시 그녀의 시선이 서방 언론의 그것과 얼마나 달랐는지 의문이다. 전장의 풍경은 원래 처참할 따름, 그녀의 리포트가 이라크전을 미국의 침략전쟁으로 인지시켰던 기억이 없다.

그때 그곳에 끝까지 있었던 그녀는 지금 이곳에 끝까지 있다. 청와대에 가서는 조인트를 까이고 <MBC>에 와서는 저널리즘을 능멸한 대표이사 편에서, 그녀는 추호의 흐트러짐도 없이 사용자 쪽 홍보국장이라는 직능적 신실성을 발휘하고 있다. 그녀에게 중요한 건 맥락적 진실이 아니다. 오로지 중요한 건, 대표이사가 절대 법인카드를 마시지 업소에서 사용하지 않았다는 파편적 사실(에 대한 믿음)뿐이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누구이든 전장의 풍경은 그저 처참하듯이, 그녀도 다만 일관되다.

그렇다면, 그녀의 이름을 회원 명부에서 지운 MBC 기자회에 묻고 싶다. 그녀는 MBC 기자회에서 과연 예외적 인물인가? 그리고 그녀의 지금 행태를 정말 ‘타락’이라고 보는가?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MBC 기자회야말로 오늘의 이진숙을 키운 인큐베이터인지도 모른다. ‘어디에 있는가’는 저널리즘 규범의 극히 일부일 뿐이며, 그 규범에만 매달리면 자칫 괴물이 될 수도 있다. 진실 추구의 과정으로서, 무엇을 보고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오늘 그녀를 통해 다시 던져봐야 할 질문이다.

※ <한국방송대학보>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