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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글

김용민이 가리는 것들

@undertrain: 김용민 노원갑 출마, 최선은 아니지만 최악도 아니다.
@yishoo90: 김용민이 국회의원에 당선돼 국정감사장에서 삼성반도체 노동자들의 백혈병 문제를 추궁했으면 한다. 거늬 회장님 성대모사로. 웃고 있는 거늬~


소설가 공지영(@congjee)은 김용민을 “성실하고 반듯하며 정말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한껏 추어올렸다. 하지만 그녀가 인우보증을 서지 않았더라도, 품성에 관한 한 그가 대한민국 정치인들의 평균치를 훨씬 웃돌 것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뒤치다꺼리 없이는 1인분의 자기 삶도 헤쳐가지 못할 것 같은 3명의 까칠한 형들이 각자의 탁월한 주특기를 유감없이 발현할 수 있었던 데는 묵묵히 내조를 도맡은 막내의 모성에 가까운 덕성이 절대적 필요조건으로 작용하지 않았겠는가.
 
‘왜 김용민인가’ 하는 물음이 중의적으로 들리는 것도 그런 사정과 닿아 있다. <나는 꼼수다>(이하 <나꼼수>)는 왜 여의도에 멤버를 파견하거나 혹은 실존적으로 귀의하는 선택을 했는가와, 피선거권이 중지된 멤버의 대타가 왜 하필 그인가 하는 두 가지 물음은 ‘김용민’이라는 깔때기를 통과하며 어지러운 갈래의 꼼수론들로 조합돼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놓쳐서는 안 되는 무언가가 이들 해석에서는 충분히 다뤄지지 않고 있다. 왜 그(들)의 선택은 이토록 뜨거운 관심과 논란을 일으키는가 하는 것이다.

정치평론가들의 늘 지당하신 말씀은 이번에도 감사히 한쪽 귀로 흘려들어도 좋을 듯하다. 다만 우리는 정치평론가들을 비롯해 수많은 트위터 논객들이 가세하는 이 논쟁 자체를 하나의 ‘현상’으로 읽어낼 필요가 있다. 일개 야당의 일개 지역구 공천에 이토록 몰입하는 건 분명 과잉이다. 이를테면 <나꼼수>가 언론인가 아닌가, 나아가 언론인이 유예기간 없이 곧바로 출마해도 좋은가 따위의 비판은 정봉주가 피선거권을 중지당하지 않았다고 가정하는 순간 질량을 잃고 만다.

이런 식의 과잉 담론은 본질적 물음을 차단하는 소음효과로 이어진다. 그리고 본질적 물음이 제기되지 못하는 속사정이야말로 이런 과잉 현상의 원인이다. <나꼼수>는 여태 반MB 전선의 펌프를 돌리는 마중물 노릇을 톡톡히 했다. 그러나 펌프가 제대로 돌아갈지 확신하기 어려운 국면으로 들어선 지금, 민주통합당은 <나꼼수>가 강력한 발전기로 진화해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감추지 않는다. 그들의 기대감은 떡 줄 사람(<나꼼수>)의 생각은 안중에도 없는 김칫국 마시기인가.

글쎄다. 정봉주가 탑승한 ‘미권스’ 타임머신의 시곗바늘은 애초 2012년 4월11일에 맞춰져 있었다. 나꼼수호의 나침반은 2012년 12월을 가리키고 있지만, 그것은 10년 전인 2002년 12월이 360도 회전한 위치와 같은 좌표다. 김용민의 출마는 그들의 일관된 궤도 위에 놓인 또하나의 관문이며, 김용민 역시 그동안의 고유한 역할을 계속 수행하는 것일 뿐이다. 이들이 성공한다면 새로운 세력의 출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한때 스스로를 ‘폐족’이라고 칭했던 이들의 동승은 불 보듯 뻔하다.

지금의 과잉 상태는 이런 문제의식이 자각되는 것을 막기 위한 집단적 자기최면 행위라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 겉으로는 윤리를 논하지만 정작 정치공학적 셈법과 다름없다. 본질은 <나꼼수>의 정치성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만 잣대가 가혹할 때 본질은 더욱 은폐된다. 나라면 차라리 그들에게 한국 사회의 약자를 위한 구조적 비전을, 총선 전에 구체적으로 보여달라고 요구하겠다. “그렇다면 여기서 당장 뛰어봐. 여기가 당신의 로두스야.” 부디 잘 뛰길 바라며!

※ <한겨레21> 903호 ‘크로스-이주의 트윗 : <나꼼수> 김용민 공천 논란’에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