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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글

MBC 파업인가 ‘무한도전’ 불방인가

요즘 내 아이의 주요 관심사 가운데 하나는 <무한도전> 본방을 언제 다시 볼 수 있느냐이다. 한 달을 넘긴 문화방송(MBC) 파업과 관련한 소소한 삽화이겠으나, 좋은 징후와 나쁜 징후를 동시에 보여준다는 점에서 생각거리가 적지 않다.

좋은 징후라면, MBC 파업이 잊히지 않았다는 점이다. 기륭전자 노동자들은 1895일을 파업했지만 그 사실을 아는 이가 많지 않았고, 올 초 1500일을 넘긴 재능교육 노동자 거리투쟁의 정확한 날수를 확인해보려고 인터넷을 검색하니 회사 쪽 홍보 기사밖에 보이지 않는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같은 언론업종인 <국민일보> 파업을 아는 이는 얼마나 될까. MBC 파업은 우리 집 어린 친구도 안다.

그러나 MBC 파업이 <무한도전>을 통해 인지되는 현실은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1990년대 방송사 파업의 압도적 풍경은 앵커가 가슴에 검은 리본을 달고 뉴스를 진행하는 것이었다. 언론사의 파업은 다른 어느 업종의 파업보다 정치성이 강하다. 언론 노동자의 노동 성격이 무엇보다 ‘진실 추구’이기 때문이다. 뉴스만 봐서는 파업을 하는지조차 알 수 없다면, 방송 저널리즘의 현주소부터 되물어야 한다.

그렇다고 이런 담론이 <무한도전>의 장르에 대한 폄하에 기초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무한도전>이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뛰어난 풍자성이다. 찧고 까부는 연예인들의 유희 사이사이에 현실의 부조리를 비트는 행간이 풍부하다. ‘괄호 안의 저널리즘’인 셈이다. 이 사회가 기자 파업에 무덤덤해진 것은 대중의 눈과 귀가 예능 프로그램에 쏠려서라기보다는 기자들의 재미없는 예능에 식상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 책임은 ‘쪼인트 사장’ 한 사람에게로 환원될 수 없다.

물론 이명박 정권 들어 MBC 노동자들은 누구보다 큰 고통을 받아왔고, 모두 다섯 차례나 파업을 하며 힘든 저항을 이어왔다. 이번 파업에 한국방송(KBS)과 YTN 노동자들까지 가세했다. 이처럼 방송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건 현 정권의 방송 장악이 방송 저널리스트들에게는 재앙이나 다름없었다는 사실과, 그럼에도 그들이 정치권력에 순치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동시에 웅변한다.

MBC의 유명 앵커인 최일구 기자가 파업에 나서면서 “(군부독재 시절인) 1987년 이전으로 돌아간 것 같다”며 울먹였다고 한다. 하지만 방송사 노동자들의 잇단 파업에 대해 “우리가 그들에게 무관심해야 그들도 파업을 하는 다른 노동자들의 고통을 알 것”이라고 한 어느 누리꾼의 일갈을 그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저항만 해서는 언론인이 아니다. 타자의 고통을 소홀히 대하지 않는, 진실 추구의 담지자로서, 저널리즘 자체에 더욱 치열해져야 한다.
 
※ <한국방송대학보>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