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외우 김종수를 보내며

그대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야 할 이 화급한 자리에서,
화급한 건
먼 길 떠나는 그대가 아니라
이 헤어짐의 의식조차
일상의 간이 무대 위에 세워야 하는 우리의 처지라는 걸 깨닫고,
난 다만
넋두리나 몇 마디 그대에게 던질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할 거라고,
아니 덜 무참할 거라고
믿기로 하였습니다.

벌써 20년이 다 되어가는군요.
우리가 처음 서로의 얼굴을 보았던 그 때가.
그래요.
그때 우린
얼마간 다들 상기된 표정들이었습니다.
훌륭한 기자가 되겠다고
대한민국 최고의 신문을 만들겠다고
생의 가장 비장한 결의를 다졌습니다.
나만 예외였던 것 같습니다.
5년만 이 일을 하겠다고…,
그 사이에 일가를 이뤄보겠다고…,
돌이켜보면
참으로 치기 어린 얘길 했었습니다.

그대 얼굴은 유난히 검붉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상기되어 보였습니다.
신문에서 그대의 이름 석 자를 발견하고
너무 기쁜 나머지
광화문에서 동대문까지
그것도 웃으며
뛰듯이 걸었다고 했지요.
그 순간에도 그대는
함박웃음을 짓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대의 웃는 입은
내 웃는 입과
참으로 대조적이었으니까요.
그대는
얼굴 근육의 3분의 2에게만 그대의 감정을 겨우 허락하는…,
터뜨리는 웃음 대신
내비치는 웃음을,
늘 짓곤 했으니까요.
우리가 처음 본 그날부터 마지막까지
변함없이 그랬으니까요.

이건 짐작입니다만,
기자로서 그대의 자세도
어쩌면 꼭,
그와 같았을 것입니다.
피사체를 앵글에 담는다는 것은
그대에겐
피사체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었고
피사체의 높이보다
한사코 낮아지려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물난리 취재를 가서
성난 탁류를 찍겠다고
가슴팍까지 몸을 물속에 담근 채
셔터를 눌러댔던 그대였기에…,
아마 내 짐작이
틀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교통사고로 누워 있었던 한 두 달만 빼면
그대는 언제나
사물을,
사람을,
세상을,
그와 같은 자세로
앵글에,
그리고 마침내 그대 가슴에
담아왔을 것입니다.

그런 그대가 우리보다,
터무니없이 치기 어린 나보다
먼저 갑니다.
먼저 기자 일을 내려놓고,
떠나갑니다.
그러나 일상의 간이 무대에서
좀처럼 발을 헛딛는 일이 없는 우리는
그대의 부음을 듣고
서로의 건강을 걱정하였습니다.
서운해하지 마세요.
그대가 우리를
이렇게 오랜만에 모이게 했고
오랜만에 진심으로, 서로를 걱정하고,
위하게 한 것이니까요.

죽음에 앞뒤가 있다고 해서
삶에도 앞뒤가 있는 것은 아니니,
지금 우리가 그대를 떠나보내려
이 자리에 모인 것도
그대를 떠나보내는 것이기에 앞서
남아 있는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는 것입니다.
이제 피사체가 되어
저기 저 사진 속에서
3분의 2짜리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그대에게,
그래서 우리는 다시금
큰 빚을 집니다.

가슴 한켠에 그 납덩이 같은 부채감을 묻고
그대에게 끝으로,
할 수 있는 약속은,
해야 하는 약속은,
이곳에서 그대가 열고 닫은 그 삶을
앞으로 내내 우리의 피사체로 삼아
우리의 처음 다짐을,
그러니까
그대가 남기고 가는 나머지 그 일을,
우리가 채워가겠다는 것입니다.
시간을 이기는 슬픔은 없고,
세월을 이기는 기억도 없습니다.
그대에 대한 기억은 차츰
희미해질 것이고
그대를 상기하는 일도 드물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대의 뒤를 우리가
시나브로 따르고
그대와 우리의 거리가
소실점으로 만나가는 것이기에,
그대는
그대의 저 3분의 2짜리 파안대소로
우리를 맞이할 자세를 생각하면 됩니다.
그렇게 약속해준다면
우리는
이제 그만
그대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잘 가십시오.
김종수 형.

※ 췌장암 투병 1년 만에 눈을 감은 신문사 입사 동기 고 김종수 기자의 한겨레사우장(社友葬)에서 물기에 싸여 읽어내려간 추도사입니다. 벗의 명목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