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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벅지 긁다 떠오른 생각

나꼼수에 대한 내 거친 생각

한국언론정보학회에서 설문지를 보내왔는데, 깜빡 하고 있다가 10여 일 만에 답장을 보냈습니다.
문화 연구자인 이기형 선생님과 이영주 선생님이 연구를 맡으셨네요.
아무튼 지금까지의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1) <나꼼수>를 어떻게 혹은 어떤 계기로 청취하게 되셨습니까? 그리고 어떤 연유로 계속 듣게 되셨거나 관심을 가지시게 되셨습니까?

나꼼수를 직접 들은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나꼼수에 관한 여러 글들을 읽었을 뿐입니다.

 

2) <나꼼수>가 대중적인 관심과 열기를 얻게 된 주된 요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각

새로운 소재/문법이 새로운 전달수단과 절묘하게 조응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재와 문법 자체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술자리 같은 비공식 담론장에서 일회적으로 소비되던 소재와 문법(이른바 정치 뒷담화)이 팟캐스트라는 ‘사적 공표의 장’으로 이전한 것인데, 거기에서 새로움이 파생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3) (2번과 관련해서) <나꼼수>의 구성적인 특성과 장점 그리고 대중과 청취자들에게 다가가고, 어필할 수 있었던 주요한 요소와 배경들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위의 ‘정치 뒷담화’는 그동안 다소 특권적인 정보접근이 가능했던 주체들에 의해 소비되어 왔습니다. 소재는 공적 성격을 띠고 있지만 유통(소비)는 지극히 사적 방식으로 이뤄졌습니다. ‘정치 뒷담화’와 동일구조의 대칭점에 있는 것이 대중문화의 압도적 소재인 ‘멜로’가 아닐까 합니다. 지극히 사적인 소재인 ‘멜로’가 대중문화 플랫폼의 거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는 것과 대비됩니다. 그런데 정치 뒷담화가 새롭고 특이한 플랫폼에 탑재된 것이 <나꼼수>가 아닌가 합니다. 특히, 팟캐스트라는 ‘미디어’ 자체가 메시지 구성력을 갖는다고 볼 때, <나꼼수>는 최적의 소재와 문법이 아닐까요. 이를테면 <나꼼수>를 HD 영상의 대형TV로 본다면 지금과 같은 반향을 일으킬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한 예가 인터넷한겨레 ‘하니TV’의 ‘뉴욕타임스’입니다. 같은 출연진이 거의 같은 소재와 문법으로 진행하지만 그 반향은 <나꼼수>에 견줄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 원인은 악세스 편의성의 한계만으로 환원되지 않습니다. 사적이면서도 정치적으로는 대단히 공적인 소재를 술자리 또는 골방에서 나누던 대화 방식을 유지한 채 공적 장으로 이전시켰는데, 그 장 자체가 광장에 골방을 재현한 것과 같은 특성(해적 라디오방송과 같은)을 갖고 있었고, 말하자면 광장으로 나온 골방 담화가 대단히 폭발적인 미학적 소구를 형성한 것이 아닐까요. 거기에 현 정권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외설성’도 소재로서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것 같습니다.

 

4) <나꼼수>의 긍정적 역할과 순기능, 그리고 문제점과 역기능 혹은 개선될 필요성이 있는 부분들에 대해서는 각각 어떻게 답하시겠습니까?

주류 담론의 허구성을 폭로했을 뿐 아니라 대중적으로 크게 성공함으로써 기존 담론장의 특권세력과 그들의 네트워크 및 연결고리를 취약하게 만든 건 그동안 누구도 해내지 못한 성과입니다. 현실정치 무관심층이 일정 수준으로 정치화하는 데도 영향을 미쳤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 역할은 앙리 베르그송 식으로 말하면 ‘자살특공대적 운명’으로 한계가 그어지지 않을까 합니다. <나꼼수>는 비정규 게릴라적 활동방식으로 현실 제도정치를 공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정치의 온건한 비판세력들과 정치적 정체성을 동일시함으로써 형식(급진)과 내용(온건)의 불일치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나꼼수>가 강력한 대중적 소구력을 형성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했지만, 대중의 정치성을 그 지점에서 멈추도록 하는 구심력으로도 작용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중은 스스로 각성할 것이며, <나꼼수>는, 그리고 그 주체는 각성한 대중의 향후 정치적 요구를 수용하는 데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5) (5번과 관련해서) <나꼼수>가 우리사회 내에서 정치적인 공론과 담화의 활성화 그리고/혹은 선거와 정치권력에 대한 진전된 이해와 문제의식 혹은 감시 등을 포함하는 다양한 관심을 형성/촉발하는데 있어서 어떠한 직간접적인 기여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판단하십니까?

4번 답으로 가름합니다.

 

6) 앞으로 <나꼼수>가 지향해야 할 정치적, 사회적 역할에 대한 전망이나 기대를 갖고 계시다면, 선생님의 의견을 적어 주십시오.

<나꼼수> 성공 이후 비슷한 시도들이 있었으나 그만큼 성공을 거두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포맷의 차용이 동일한 성공을 담보하지 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나꼼수>도 지금의 소재와 문법 안에서 자기완결적인 주기 곡선을 그려가지 않을까 합니다. 따라서, <나꼼수> 자체보다는 정치사회 제세력이 ‘나꼼수 현상’을 어떻게 참조해 자신의 실천적 활동 방식을 어떻게 미래화할지 탐색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더라도 <나꼼수>만큼의 극적 성공을 기대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적어도 진지전을 생각한다면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