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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 꽂힌 타인의 글

지율 스님이 김진숙 지도위원에게 보내는 편지

지율 스님께서 김진숙 지도께 편지를 썼습니다.
뭇생명을 살리시려고 수백 일을 단식하셨던 지율 스님은 그동안 200일을 훌쩍 넘겨 고공농성을 하시는 김진숙 지도위원 말씀을 자주 하지는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가끔 말씀을 꺼내실 때면 깊은 한숨을 포옥 내쉬셨습니다.
저는 두 분 모두께 제 의지만 투사했을 뿐, 참 무감했던 것 같습니다.
지율 스님의 편지를 읽고 깨단했습니다.
<인터넷한겨레>에 실린 스님 편지를 퍼 옮깁니다.


4대강 공사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아름다운 모래강, 내성천을 살리기 위해 땅 한평 사기 운동을 시작한 지율스님이 소금꽃 김진숙씨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외로운, 그러나 의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두 분 사이에 오작교가 놓이는 순간입니다. 편집자 
    

김진숙님에게


하루에도 몇 번씩 내려오는 꿈을 꾸고 있을 그곳을
저는 하루에도 몇 번씩 올라가는 꿈을 꿉니다.
제 꿈은 언제나 계단 어디쯤에서 발을 헛디뎌 추락하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꿈을 깨고 안도의 숨을 몰아쉬는 동안에도 제 가슴은 쿵덕거립니다.

그렇지만 저는 당신에게 그곳은 너무 높아 위험하다고,
이제 그만 땅으로 내려와 달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서있는 이 땅은 당신이 올라간 그 크레인보다 더 위험하고
당신이 불면으로 지새우는 밤의 적막보다 더 고독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다 우리는 답이 없는 세상에 왔습니다.
가장 평화로운 툇마루 끝 해 그늘 아래서조차
권태로울 수 있는 시간을 빼앗긴지는 너무나 오래되었습니다.

지난주 희망버스에 탑승했던 한 친구가 제게 와서,
당신이 내려오면 내성천을 걷게 하고 싶다고 합니다.
점점 까마득하게 높아져가는 크레인 위에 서있는 당신이
내성천의 낙조 속에 서 있는 모습을 잠시 그려보았지만

그러나 200여일의 시간을 까마득하게 묻고
떨어지는 낙조마저 살대일 곳 없이 무너져가는 살풍경 속으로
내려와 달라고 하는 것은 뛰어내리라고 하는 외침보다
더 잔혹한 주문임을 알기에 그래서 저는 혼란스럽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대해서,
그리고 그들에 대해서 연민하는 마음을 가져 주세요.
희망을 물어다 주는 작은 새들이 날아 가버린 뒤
눈물로 벽을 세워야하는 밤을 지내게 되더라도,

비록 내려서는 걸음이
올라갔던 그 계단보다 더 아득하게 깊을지라도,
저는 당신이 내려올 그 길을 바라보며 기도합니다.

2011년 8월 지율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