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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벅지 긁다 떠오른 생각

KBS 앞 폭력과 학살의 기억



해질 무렵 들려온 소식

어제(6월23일) 해질 무렵 <미디어스> 사무실에서 머리털 비틀어가며 글을 쓰고 있는데,
한 기자가 대뜸 이런 말을 하더군요.

“다음 아고라에 방금 떴는데, KBS 앞에서 1인시위하는 여성이 집단폭행을 당해 병원에 실려 갔대요.”

가해자는 이른바 ‘보수단체’(단체 이름을 몰라 이번에도 하는 수 없이 이 제도권 표현을 쓰지만, 그럴 때마다 목에 탁탁 걸립니다) 회원들이라고 하더군요.

마침 ‘언론 자유와 집회 자유의 관계’에 대해 두 번째 글을 쓰고 있던 터여서인지
다른 때보다 훨씬 마음이 언짢았습니다.
할일이 많이 남아 있었지만, 저녁 반주로 소주 한 잔 걸치지 않을 수 없더군요.

술은 마시는 순간 두뇌와 가슴 사이 연결통로를 확장시킨다는 게 제 오랜 음주 이력에서 나온 결론입니다.
덕분에 이성과 감성이 뒤섞여 마구 활성화되지요.
어제 저녁에는 오래 잊고 있었던 사건 하나가 먼저 떠올랐습니다.


8년 전 한겨레신문사 앞에서 겪은 각목 구타 사건

2000년 한겨레신문사에서 기자질 할 때였습니다.
내근을 하려고 오후에 신문사 앞에 도착했는데, 전경부대가 일대를 에워싸고 있었습니다.

들어가려고 하자 가로막더군요.
“내 회산데 니들이 왜 못 들어가게 해.”
그때까지는 호기가 넘쳤습니다.

하지만 막무가내로 전경 인계철선을 뚫고 들어가는 순간, 머리 위에서 번갯불이 콩볶듯 튀었습니다.
고엽제 전우회 어르신들이 제게 집단으로 각목을 휘두른 것입니다.

전경들이 저를 에워싸서 빼내줬기에 망정이지,
자칫 어제 그 여성 꼴을 당할 뻔했습니다.
(그런데 경찰은 어제 그 여성이 그 지경이 되도록 뭘 했는지 모르겠군요.)

어르신들이 없는 곳을 찾아내 어렵게 편집국에 들어서 막 의자에 앉는 순간,
이번엔 유리창이 와장창 깨졌습니다.

하여튼 머난먼 이국에서 용병으로 이름을 날리신 어르신들다웠습니다.
그 백발성성한 노구로 7층 높이까지 짱돌을 날리신 겁니다.

그날 한겨레신문사는 난장판이 되었지요.
신문용지를 쌓아둔 창고로 불이 날아들어, 일찍 발견하지 못했다면 대형화재로 번질 뻔하기도 했습니다.


8년 전과 지금, 두 사건이 하나로 만나다

8년 전 얘기를 장구하게 늘어놓은 건
그때 사건과 어제의 사건이 서로 다른 듯 하나로 만난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술 기운에.

당시 그 어르신들은 <한겨레21>의 ‘한국군 베트남 민간인 학살’ 보도에 분기탱천해
일을 저질렀습니다.

“빨갱이를 무찌른 건데, 학살은 무슨 학살이냐.
 빨갱이를 두둔하는 신문도 빨갱이다.
 그러니 없애버리겠다.”

주장하는 내용을 간추려보면 대강 그런 거였습니다.

어제는 어땠습니까.

신문을 보니 그 여성을 무차별 폭행하면서
“빨갱이들은 다 죽여야 된다”고 했다는군요.

사실과 진실의 의제를 모두 색깔의 문제로 환원해버리거나,
말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는 것이야,
한두 번 보고 겪은 게 아니니 오히려 진부할 지경입니다.


그들을 달리 볼 수는 없을까


저는 여기서 눈여겨 봐야 할 것은 따로 있다고 생각합니다.

8년 전 사건은 자신들의 실존의 문제에 대한 즉자적 반응이었습니다.
방법은 틀렸지만 화가 날 만도 하겠다, 이 정도까지는 물러서서 이해할 수 있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어제 사건은 어떻습니까.

“공영방송 사수”(설령 그 분들 눈엔 ‘선동방송 감싸기’로 비치더라도)가
도대체 그 분들 실존과 얼마나 밀접한 관련이 있기에
힘도 세지 않은 비무장 여성 한 사람에게 무더기로 달려들어 각목질까지 해댔을까요.

저는 그 분들의 행태는 행태대로 강력히 비판받아 마땅하더라도,
그 분들은 누구 못지않은 국가폭력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우리가 민감하게 인지하자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 분들 개개인의 일대기, 그러나 공통의 역사적 기억 속으로 들어가 봅시다.


배고픈 반공 청년으로 자라 미국 용병이 되다

어려서 죽음과 삶의 경계를 넘나드는 무시무시한 내전을 겪고,
굶주림과 헐벗음을 모두 빨갱이 탓으로 돌리는 체제 이데올로기를 주입받았습니다.

청년은, 가난을 벗기 위한 현실적 동인을
‘체제 수호를 위한 성전’의 이데올로기로 내면화하는 학습을 받고
머나먼 베트남 땅으로 미국의 용병이 되어 떠납니다.

자신과 아무 상관도 없는 전쟁에 잘못 끼어든 청년에게
전쟁의 당위는 취약한 체제 이데올로기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본디 그렇듯이, 눈앞에 현시되는 낭자한 유혈은
전쟁에 대한 어떤 회의나 의심의 싹도 제거해버립니다.

적이 있는 곳으로 총구를 향하는 게 아니라, 총구가 향한 곳에 적이 있습니다.
아녀자도 죽이고 어린이도 죽이고 노인도 죽입니다.
그러다 동료도 죽습니다.


한몸 안의 두 인격, 출구 없는 적개심


목숨을 부지해 귀국한 뒤에는
목숨값으로 모은 돈으로 생계를 부지합니다.

그러나 한몸이 감당하기에는
전쟁과 평화, 학살과 보살핌의 간극이 너무 큽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시름시름 앓거나 죽지만
목숨 걸고 사랑했던 국가는 아는 체하지 않습니다.

적개심은 선연한데, 투사할 대상을 모릅니다.
국가를 의심했다가는, 전쟁의 기억이 곧장 학살의 악몽으로 변합니다.
내면화된 체제 이데올로기만이 적을 가리키는 유일한 나침반입니다.

정권은 더러 바뀌었지만, 중년을 거쳐 노년이 된 그에게는
체제 이데올로기를 심어준, 그리고 머나먼 쏭바강으로 파병한
그 세력만이 오로지 충성을 바칠 국가입니다.

그 세력이 때마다 자신을 호명할 때,
그의 몸은 조건반사적으로 달려갑니다.

그 세력에 도전하는 어느 누구도 적입니다. 빨갱입니다.
그렇게 믿지 않으면 자신의 지난 일대기는 곧 무너지고 맙니다.


그들에겐 진짜 배후가 있다

정작 야비하고 잔인하고 폭악한 세력은
그 어르신들이 아니라 그 배후라는 생각이 듭니다.
배후는 어르신들의 분열적 고통을 방치하고, 나아가 조장합니다.
긴장된 조련 상태를 유지하려면 고통은 필수이니까요.

배후는 그 분들의 분열적 고통과 피해 의식의 원인이자
자물쇠이며
무기형의 감옥입니다.

배후는 그 고통과 희생을 연장해가며,
고통과 희생의 무동을 타고 권력과 번영을 누립니다.
거리에 나선 그 분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는 이들을 보십시오.
유학 가 있는 자식들은 몇이나 군대를 다녀왔고, 몇이나 한국국적을 갖고 있을까요?

한쪽에서는 그 분들의 행동을 국가보상에 대한 불만 탓으로 해석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그 분들에게는 다른 접근이 필요합니다.


국가 폭력의 하수인이자 피해자

그들은 민주화 유공자도 아니고, 일방적인 국가 폭력 피해자도 아닙니다.
국가 폭력의 하수인이자 동시에 피해자입니다.
이 진실을 대면하기가 어느 누구도 쉽지 않다는 게 문제죠.

대면, 고해, 소통, 치유, 보상….
이런 낱말들이 앞뒤없이 떠오릅니다.

무엇보다 배후 척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