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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글

‘7천만 원’이라는 불문법

짧다고만 할 수 없는 시간을 두고 살펴본 바, 한국의 주류 언론이 결코 태도를 바꾸지 않는 사안은 딱 하나다. 가장 완고할 것 같은 북한에 대한 보도 태도도 어떻게든 상황논리를 반영하게 돼있다.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 때 그들이 누구보다 격정적이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 어떤 사실관계와 맥락에서도 끝내 변하지 않는 것은 다름 아닌 노동자 파업에 대한 보도 태도다. 그것은 이제 클리셰를 넘어서 뚜렷한 강령으로 자리 잡은 것처럼 보인다.

@ 한겨레 김태형 기자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유성기업 노동조합이 합법적 파업을 하고도 뭇매를 맞고 있다. 노동자들은 사용자 쪽의 사업장 폐쇄에 맞서 점거농성을 벌이다 무더기로 구속됐다. 그러나 공권력의 매질 전에 언론의 멍석말이가 먼저 있었다. 보도만 보면, 파업 노동자들은 국가경제 차원에서 범죄자이고, 공동체 차원에서 파렴치한이다. 자동차 제조사들이 조업을 중단하는 사태는 용납될 수 없다. 귀족노조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통을 외면한 채 생떼를 쓰는 것도 마찬가지다.

실정법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누가 계산했는지 알 수 없지만, ‘수출 차질액’이라는 아라비아 숫자는 고래로 법조문보다 상위였다. 그에 견주면 ‘연봉 7천만 원’은 신설 조항에 가깝다. 극히 일부 사업장에서나마 노동자 임금이 그 수준까지 간 게 비교적 최근의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력은 대단하다. 언론이 떠들어댄 것을 대통령이 라디오 연설에서 되풀이한다. ‘7천만 원’은 하나의 편집증이 된다. ‘6999만 원’이면 어찌할지, 앞으로는 합법과 불법을 가르는 기준을 연봉으로 삼을지 궁금하다.

노동자 파업에 대한 이런 프로파간다는 크게 두 가지 층위에서 이뤄진다. 첫째, 법률적이자 정치경제적인 사안을 윤리화하는 것이다. 파업은 이유와 사정을 불문하고 국가공동체를 파괴하는 비윤리적 행위로 간주된다. 둘째, 사실관계의 왜곡이다. 잔업에 철야, 휴일노동까지 다 합쳐도 평균 연봉 5천만 원이 조금 넘는다는 명백한 사실은 주눅 든 변명이 되고 만다. 그리하여 담론의 장에서 논쟁 지점이 크게 후퇴하는 효과로 이어진다.

무엇보다 ‘연봉 7천만 원’ 안에는 뿌리 깊은 노동자 경시 태도가 숨어 있다. 처음부터 7천만 원이냐 5천만 원이냐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감히 생산직 노동자가 그만한 돈을 받는 게 문제다. 그들이 제대로 된 대책 한 번 내놓은 적이 없이 말로만 걱정하는 비정규직의 저임금은 정작 그들이 생각하는 생산직 노동자의 적정 임금이다. 그러고도 파업 노동자를 귀족이라고 비난하는 주류 언론의 기자들은 7천만 원보다 많은 연봉을 받는 임금 노동자이고, 그 비난을 확대재생산하는 대통령은 100억 원대 자산가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

※ <한국방송대학보> 제1631호(2011년 6월 6일치)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