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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글

‘게이트’의 야릇한 법칙

이만 하면 ‘게이트’라 부를 만한 대특종이다. 부산저축은행이 영업정지 전날 밤, 고액 예금주인 이른바 ‘가장 선량한 고객’들을 은밀히 (정작 자기들끼리는 대놓고) 불러서 돈을 빼준 행위를 시사주간지 <한겨레21>이 폭로했다. 다른 매체들이 일제히 뒤를 좇았고, 대통령까지 나서서 관계기관에 엄중 조처를 지시했다. 그러나 선처의 여지가 없는 부산저축은행의 범죄 행위는 그 자체로 게이트를 구성하지는 않는다. 게이트는 행위의 영역이 아니라 담론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 행위를 둘러싸고 여론의 장에서 전개되는 과정이 게이트를 구성하는 것이다.

보도를 처음 접했을 때, 나는 과거 유사 사례들이 머잖아 더 들춰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예금 인출 사태를 두려워해야 할 금융기관이 자진해 거액을 빼준 것은 그들의 품성과 아무 관련이 없을 터였다. 끝까지 VIP를 우대해야 훗날 영업정지가 풀린 뒤에도 그들을 붙들 수 있을 것이라 셈을 했을 법하지 않은가. (그래서 ‘선량한 고객’은 반어가 아니라 은유다.) 또, 그런 셈을 할 줄 아는 게 부산저축은행뿐이었겠는가. 예상대로 유사 사례가 보도되기 시작했다. 이로써 늦깎이 유명세를 타는 무명 배우처럼, 과거의 행위가 오늘의 게이트 무대에 캐스팅됐다.

그럼, 이번 사태를 일파만파 번지게 한 요인은 무엇일까. 사건의 크기일까, 아니면 범죄의 흉악성일까? 물론 사건 크기는 결코 작다 할 수 없고, 범죄 수법도 노골적이다. 하지만 크기만 놓고 보면 부산저축은행 사건은 경량급이다. 수법도 단순 무식하되 교묘하지는 않다. 국책은행이었던 외환은행을 주가조작까지 해가며 통째로 먹고 튀려는 국제투기자본 론스타의 행태와 견줘보라. 장담컨대, 이 글을 읽는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그런 일이 있는지조차 모를 것이다. 달리 말해, 부산저축은행 사건이 게이트가 된 것은 크기와 수법 모두 맞춤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이제 물음의 구조를 바꿔보자. 론스타는 왜 게이트가 되지 않았을까. 왜 신문·방송에서 관련기사를 보는 것조차 쉽지 않은 걸까. 론스타가 부산저축은행만큼 만만한 사이즈가 아니어서인지 모른다. 고도로 복잡한 론스타의 수법이 부산저축은행의 단순 무식한 수법만큼 선정적이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더 본질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론스타의 행태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체제 규범을 충실히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설령 실정법의 구체 조항에 저촉되는 행위를 저질렀더라도 그것이 신자유주의적 규범에 닿아 있으면 얼마든지 승인된다.

이것이야말로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대통령의 휴가지에 동행하고 밀리언셀러 반열에까지 오른 한국 사회에서 게이트가 구성되는 맥락이다. 정의는 부산저축은행 사태처럼 개인윤리의 문제일 뿐 체제에 대해 물을 수는 없는 것이다.



※ <한국방송대학보> 제1627호(2011년 5월 9일치)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