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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미디어, 새로운 촛불입니다

우리 모두가 기자이고 미디어 감시자다
미디어스 안영춘 기자  jona0712@hanmail.net 
 
 
놀라움 앞에서는 지금 누구나 하나다. 거리 위의 사람들도, 거리 밖의 사람들도, 버스와 물대포로 가로막은 자들도, 그 장막 뒤 구중심처에서 웅크린 자들도. 그러나 전대미문의 사태 전개 앞에서, 경계는 선명하고 가파르다. 긍정하는 자-부정하는 자, 즐거운 자-두려운 자, 두 눈 부릅뜨는 자-애써 눈감거나 겨우 실눈 뜨는 자.

‘배후’는 명확하다. 이명박 정권과 조·중·동! 반면, ‘주동’과 ‘핵심’은 모호하다. 아니, 헤아리고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광우병 쇠고기는 죽어도 못 먹겠다는 소비자, 0교시와 사교육에 신음하는 학생·학부모, 전국의 산과 강을 뚫고 파헤쳐 기껏 거대한 ‘목욕탕’을 만들려는 계획을 이해할 수 없는 상식인, 아플 때는 병원 진료 받고 언제든 수돗물을 쓰고 싶은 소시민, 노력한 만큼 대접받고 싶은 비정규직 노동자와 88만원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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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2시간 릴레이 국민대행진' 마지막날 촛불집회가 지난 8일 저녁 3만여 명의 시민들이 모인 가운데 서울 시청광장에서 열렸다. ⓒ서정은

   
   
거리의 풍경도 만화경이다. 태극기와 애국가의 비장감과 만화 캐릭터와 우스개 구호의 발랄함이 공존한다. 경찰 대치선에서는 물리력이 충돌하지만, 몇십 미터 밖에서는 연인의 어깨동무가 자연스럽다. 하지만 제가끔의 실존적 분노는 정확히 한곳으로 집중된다. 이명박 정권과 조·중·동은 이 모든 낱낱의 분노에서 시위이자 과녁이다. 흩어진 개인이 하나둘 불을 밝히자, 촛불은 어느덧 물대포로는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불꽃이 되어 거리를 흘러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기적의 ‘배후’는 정작 따로 있다. 촛불의 불씨가 처음 지펴진 곳은 인터넷이다. 생생한 현장중계로 불꽃을 이어간 것은 거리 위의 노트북과 캠코더다. 거리를 투쟁과 유희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창조한 것은 네티즌의 상상력과 집단지성이다. 사이버공간에서, 또 그 역설적 확장공간인 현실의 거리에서, 놀고, 싸우고, 회합하고, 전파하고, 마침내 기록하는 이들 존재는 ‘1인 미디어’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

아날로그가 지배하는 낡은 미디어 패러다임은 이제 해체되었다. 새로운 미디어 패러다임 안에서 산더미만한 윤전기와 송신탑은 엄지손가락만한 와이브로와 경합한다. 기술만의 문제가 아니다. 현장 안과 밖의 경계도 사라졌다. 피시방에서도, 집안에서도 중계는 계속됐다. 기자와 취재원의 역할 구분도 무너졌다. 1인 미디어를 취재하는 방송기자를, 다시 그 1인 미디어가 취재했다. 무엇이나 미디어고, 어디서나 미디어이며, 누구나 미디어인 시대가 왔다.

그럼에도 이번 사태의 끝은 아직 관측되지 않는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철회되든, 아니면 이명박 정권의 바람대로 거리의 촛불이 꺼지든, 어느 경우도 시작일 뿐이다. 한-미 쇠고기 협정은 먹을거리 영역까지 침투한 양극화·신자유주의의 한 단면이고, 촛불은 이에 맞서는 저항과 소통의 아이콘이다. 개인의 삶과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은 파도처럼 끝없이 밀려들 것이고, 그에 맞서려면 오래도록 꺼지지 않을 촛불이 필요하다.

1인 미디어도 아직은 취약하고 불완전하다. 조·중·동을 관에 넣어 대못질하는 일은 요원하다. 감시와 압박의 필요성은 끝이 없다. 조·중·동을 겨냥한 싸움은 그나마 목표와 대상이라도 간명하다. <다음 아고라>가 열린 광장이 되려면 포털자본의 영향에서 벗어나야 한다. 거리로 나선 ‘아고라’ 깃발은 온라인에 견줘 과소대표성의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닌 아고라의 이름을 일부가 전유한다면 인터넷 민주주의는 왜곡된 대의민주주의보다 위험할 수 있다.

하지만 미디어의 전유를 막을 수 있는 것 또한 미디어 자신이다. 콘텐츠의 생산-소비, (심지어 감시)가 선형적인 분업구조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 완전한 언론자유에 이를 수 없다. 우리 모두가 기자이자 동시에 미디어 감시자로 안팎의 경계를 넘나드는 뫼비우스의 띠가 될 때라야 가능한 일이다. 영원히 타오르는 촛불을 밝히기 위해 1인 미디어의 능동적인 참여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미디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