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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글

미디어계의 리바이어던이 출현한다

헌재 결정으로 출현하게 된 ‘종편’이 지상파보다 무서운 이유

헌법재판소는 국회의 미디어 법안 처리의 위법성과 법안 자체의 유효성을 동시에 인정함으로써 법 해석의 미학을 유감없이 과시했다. 해석이 없는 법은 박제와 같다. 그 많은 법조인들이 먹고 살 수 있는 것도 법이 해석을 통해서만 작동하는 속성 덕분이다. 그래서 “법대로 하라”는 말은 발화자에게 아무런 정의(正義)의 실체적 준거를 돌려주지 않는다. 다만 헌재의 이번 결정이 유별난 건 모순을 지양하지 않고 일거에 초월해버리는 놀라운 영감에 있다. 법학의 범주를 넘어 가히 초현실주의적 미학의 경지에 이른 셈이다.

헌재의 결정으로 한국의 미디어 시장은 이제 자본의 각축장으로 돌입할 수 있는 헌법적 정당성을 부여받았다. 이 법안이 미칠 파장과 관련해 그동안 첨예한 논란이 있어 왔다. 주로 신문과 대기업의 지상파 진출이 쟁점이었는데, 내 관심은 이번 법안에 허가 근거가 마련된 종합편성채널(종편)에 더 쏠려 있었다. 종편은 지상파가 아닌 케이블 채널이면서도 지상파와 똑같은 편성을 할 수 있다. 전달 수단만 다를 뿐 지상파 방송사나 다름없다. 신문기업이나 대기업들이 눈독을 들이는 것도 지상파보다는 종편이다.

이들이 종편을 선호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지상파보다 투자비가 적게 든다. 지상파는 송신탑을 곳곳에 세워야 하는 등 하드웨어에 들어가는 비용이 케이블 채널보다 크다. 다른 하나는, 공적 통제로부터 훨씬 자유롭다. 아무리 선정성 경쟁을 벌인다고 비난을 사고 있더라도, 지상파는 정부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와 민간기구로 포장돼 있지만 사실상의 정부기구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물론, 시민사회단체로부터 다양한 직·간접 통제를 받는다. 이에 견줘 케이블에 대해서는 잣대도 느슨하고 관심도 적다.

꼭 젊은 여성의 옷을 벗겨야 선정성이 있는 게 아니다. 얼마 전부터 한 케이블 채널은 ‘80일 만에 서울대 가기’라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족집게 사교육 강사들이 출연해, 시험 점수를 끌어올릴 수 있다며 갖은 비기를 공개한다. 신뢰도를 검증할 수 있는 장치가 없는 것도 문제지만, 교육이라는 공공적 영역에 대해 사적 욕망을 이처럼 노골적으로 부추기는 프로그램을 방송할 수 있는 건 문제의 채널이 케이블이기 때문이다. 지상파라면 당장 여론의 뭇매를 맞았겠지만, 이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비판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지상파를 공공재로 보는 것은 전파자원의 희소성 때문이다. 그러나 케이블 채널수는 사실상 무제한이다. 종편은 지상파의 위상에 버금가면서도 공적 통제의 논리적 근거가 미약하다. 그런데도 정부는 오로지 산업의 논리로 종편 허가를 밀어붙였고, 이젠 온갖 지원책까지 강구하고 있다. 헌재가 초현실주의로 국가권력의 리바이어던이 됐듯이, 지금 미디어계의 리바이어던이 소리 소문 없이 우리 곁에 바짝 다가와 있다.

※ 이 글은 <한국방송대학보> 제1561호(2009-11-9)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