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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글

‘피디 저널리즘’ 얕보는 ‘기자 저널리즘’께

그 차별과 배제의 인식론이 갈수록 초라해지는 현실 
 
안영춘 기자  jona01@mediaus.co.kr 
 
 
‘기자 저널리즘’과 ‘피디 저널리즘’이라는 개념 구분이 있다. 구분이란 비교를 거쳐 그 차이점을 도출한 뒤 카테고리화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둘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어야 할텐데, 나는 그것이 뭔지 잘 모르겠다. 기자가 하면 기자 저널리즘이고 피디가 하면 피디 저널리즘이라는 정도라면 굳이 구분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을 텐데 말이다.

짐작가는 대목이 없진 않다. 이런 구분은 기자 저널리즘은 ‘기록’을, 피디 저널리즘은 ‘연출’을 중시한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 같다. 경향적으로 그럴 수는 있겠다. 신문 기사나 방송 리포트는 분량이 짧다보니 사실관계만 압축해 전하는 기법이 발달했다. 이에 견줘 방송 시사 프로그램은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다양한 표현요소들을 동원한다.

하지만 어느 경우도 ‘사실’에 입각하지 않고서는 저널리즘이라고 할 수 없다. 동시에 어떤 표현이든, 저널리즘 표현조차도, 연출 없인 불가능하다. 여기서 ‘연출’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주 쓰는 연출, 또는 설정(저널리즘 차원에서는 ‘왜곡’)이라는 표현과 다른 맥락으로 쓰인다. 사실의 군(群)을 텍스트로 재현하려면 반드시 개별 사실들을 선택하고 배치·재구성해야 하는데, 이것이 연출이다. 신문도 예외는 아니다.

개념 구분의 타당성을 넘어서, 기자 저널리즘과 피디 저널리즘을 굳이 구분하려는 쪽이 누군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누군가는 ‘차별’하기 위해 ‘구분’을 시도한다. 기자 저널리즘과 피디 저널리즘을 가르려는 쪽은 한사코 기자 쪽이다. 특히 방송 내부보다는 신문 쪽이 강하다. 그 논리 안에는 ‘정통 대 아류’ ‘진품 대 짝퉁’이라는 위계화된 차별의식이 존재한다.

▲ 경찰은 용산 철거민 농성을 도심테러라고 규정했고 언론들은 이를 검증없이 보도했다. 그러나 PD수첩 취재 결과, 경찰이 화재피해를 입었다던 약국의 말은 전혀 달랐다. ⓒMBC 화면 캡처


저널리즘에 관한 이런 구분 담론이 거셌던 때가 두 번 있었다. 몇해 전 MBC 의 황우석 보도와 관련해 취재윤리 논란이 벌어졌을 때와, 같은 프로그램의 미국산 소고기 관련 보도 논란이 1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지금이다. 두 번 모두 일부 신문들이 공격을 도맡았는데, ‘훈련받지 않은 아마추어들이 사고를 친다’ ‘결론을 정해놓고 짜맞추기 취재를 한다’는 비판이 이들의 주요 레퍼토리다.

이들 신문은 그때마다 PD수첩의 보도 내용·관점과 정반대에 서 있었다. 어쩌면 이런 구분 담론 자체가 상대를 공격하기 위한 허위 담론인지 모른다. 저널리즘의 최대 금기는 ‘사실 왜곡’이며 궁극적인 목표는 ‘진실’이다.

지난 19일 밤 PD수첩은 검찰의 용산참사 관련 발표에서 거짓이거나 과장됐거나 은폐된 사실들을 꼼꼼히 들춰냈다. PD수첩을 얕보는 일부신문들이 ‘도심테러’라는 검찰 발표만 열심히 따라하고 있을 때였다. 누가 누구를 얕본단 말인가.

※ 이 글은 <한국방송대학보> 제1541호(2009-05-25)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