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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글

모기는 섹시한 사람을 좋아해?

적을 알아야 승리한다…그 작고 사악해 보이는 생물체에 대한 몇가지 궁금증

난 몸에 열이 많습니다. 어려서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고, 성인이 되어서 과하게 몸을 혹사하며 살다 보니 체질이 변한 것 같습니다. 땀도 심하게 많이 흘리게 됐습니다. 오늘도 동네 뒷산을 두어 시간 오르내렸는데, 웃옷은 물론이고 바지 허리춤까지 소금띠가 앉더군요. (어떤 이는 그런 나를 ‘물탱이’라고 불렀습니다.) 몸에 열이 많고 땀을 많이 흘리면 모기의 공격 대상이 됩니다. 일러 ‘인간 모기향’이지요. (물론 그런 사람만 모기에 잘 물리는 건 아닙니다. 나를 ‘물탱이’이라 불렀던 이는 오히려 몸이 차갑고 건조한 편인데, 함께 있으면 나보다 모기에 더 잘 물렸습니다. 아마 모기가 특정한 체취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일 겁니다.)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하니 예전에 썼던 글이 떠올라 여기에 옮겨 봅니다. 봄의 시간은 언제나 안타깝습니다. 특히 여름이 고통스러운 제겐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이 글은 <한겨레21> 2002년07월17일 제418호에 쓴 글입니다. 여름 밤 모기에 물린 이에게 이 글 얘기를 들려줬더니, 분홍색 잇몸을 드러내며 파안대소했던 일이 기억나는군요.  


▲ 모기에 물려도 바로 알아채지 못하는 건 모기가 마취작용이 있는 항응혈성 물질을 분비하기 때문이다.

손바닥으로 탁 치면 죽어 벽에 납작하게 들러붙는 가냘픈 모기. 그러나 압사의 뒷모습은 모기마다 일정하지 않다. 가장 확실하게 대별되는 건 유혈이 낭자한 모기와 그렇지 않은 모기. 잔뜩 피를 흘리고 죽은 모기의 주검은 탐욕의 종말이 어떤 모습인지를 보여주는 듯하다. 그렇다고 피를 흘리지 않고 죽은 모기한테서 피어보지도 못하고 저버린 여린 생명에 대한 측은지심이 드는 건 아니다. 피를 흘린 모기는 배부른 모기이고 그렇지 못한 모기는 배고픈 모기일까. 이 작고 사악해보이는 생명체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얼마나 될까. 사소하지만 필요한, 모기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본다.

모기에 더 잘 물리는 사람은 따로 있다?

여름밤 바깥에서 여럿이 모여 앉아 놀다 보면 유난히 모기에 잘 물리는 사람이 한명씩은 꼭 있다. 그런 사람은 마치 다른 사람들을 모기로부터 지키기 위해 혼자 조용히 타들어가는 ‘인간 모기향’과 같다. 이처럼 한자리에서 도맡아 모기에 물리는 사람은 다른 자리에서도 똑같은 수난을 겪는다. 모기가 특별히 좋아할 무엇인지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 까닭을 알면 모기의 ‘스토킹’도 웬만큼 줄일 수 있다.

모기에 자주 물리는 사람은 일단 땀을 많이 흘릴 가능성이 높다. 몸에 열이 높거나 호흡량이 많은 사람일 수도 있다. 모기가 피를 빨 대상을 고르는 요인에는 시각과 함께 동물이 발산하는 이산화탄소·몸냄새·체온·습기 등이 있다. 모기의 시각은 1∼2m 거리에서 작용하고, 체온 또는 체습은 1m 이내의 것을 감지한다. 그러나 이산화탄소는 풍향에 따라 10∼15m까지 감지할 수 있고, 몸냄새는 15∼20m까지 감지한다.

이런 까닭들 때문에 땀을 많이 흘리는 사람이 모기의 공격대상 1호가 된다. 땀냄새에 모기가 끌리기 때문이다. 땀을 많이 흘리는 사람은 대개 호흡량과 열, 습기가 모두 많게 마련이다. 어린이들이 모기에 잘 물리는 것도 호흡량과 열이 많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임신 중인 여성도 모기에 노출될 확률이 보통사람보다 2배쯤 높다. 또 짙은 색깔의 옷은 옅은 색깔의 옷보다 모기를 시각적으로 유인하는 효과가 크다.

그 밖에 모기는 발냄새가 많이 나는 사람을 좋아한다. 화장품 냄새에도 잘 반응하기 때문에 여름철에 바깥에 나갈 때는 진한 화장을 피하는 게 좋다. 재미있는 사실은 모기가 페로몬이라는 성적 자극물질에도 반응한다는 조사보고서가 몇해 전 발표된 것이다. 그래서 나온 말이 ‘모기는 섹시한 사람을 더 잘 문다’이다. 그러나 모기가 O형 혈액형 피를 더 좋아한다든가 하는 속설은 과학적으로 근거가 입증되지 않았다.

사람은 모기보다 둔하다?

왜 사람들은 번번이 모기에게 당한 뒤 물린 자리가 부어오르고 나서야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달을까. 불행하게도 모기가 처음 물었을 때 사람은 감각으로 느끼지 못한다. 모기는 사람이나 다른 동물을 물 때 피가 굳는 것을 막아주는 항응혈성 물질이 든 타액을 침샘에서 분비한다. 그래야 피를 오래 빨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항응혈성 물질은 마취작용을 한다. 모기가 처음 물었을 때는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건 당신이 둔한 탓이 아니다. 따라서 모기의 공격을 초기에 막으려면 쉴새없이 온몸을 살펴보는 수밖에 없다.

사람이 통증을 느끼기 시작하는 건 인체의 피부조직이 모기가 주입한 타액을 외부에서 침입한 이물질로 간주해 이를 제거하려는 면역학적 반응을 나타낼 때부터다. 이것이 가려움과 통증을 수반하고 빨갛게 부어오르게 하기 때문에 비로소 모기에 물린 사실을 알아채는 것이다. 같은 모기에 물리고도 더 가려워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사람에 따라 증상에 대한 감수성이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피부가 약하고 가려운 부위를 계속 긁어 2차감염이 생기므로 모기 물린 자리가 쉽게 짓무른다. 모기에 물렸을 때 흔히 침을 바르는데 2차감염 가능성을 높이므로 피해야 한다.

모기의 주식은 피다?

모기는 피를 빨지만 그것으로 ‘연명’하지는 않는다. 모기의 주식은 식물즙이나 과즙, 여기에 ‘놀랍게도’ 이슬이 더해진다. 여기까지만 보면 흡혈귀의 미덕보다는 풀벌레의 미덕을 더 많이 갖춘 게 모기다. 그렇다면 모기는 먹고사는 데 필요한 것도 아닌 피를 빨아 어디에 쓸까. 다름 아닌 번식이다. 암컷은 수컷과 교미해 수정란을 갖게 되면 흡혈활동을 시작한다. 수정란이 없는 수컷은 피를 빨지 않는다. 모기는 수컷의 품성이 훨씬 좋은 셈이다. 물론 사람의 관점으로 볼 때 그렇다.

암컷이 빨아들인 피는 수정란에 단백질 등의 영양분을 공급해 알로 성숙시킨다. 암컷은 수정 뒤 사흘에 한번씩 두번 정도 피를 빨고 알을 낳는다. 모기는 ‘평생’ 한번 교미하지만 여러 차례에 걸쳐 산란을 하며, 거기에 맞춰 흡혈활동도 반복한다. 모기가 한번에 빨아들이는 피의 양은 약 5㎕(마이크로리터, 마이크로는 100만분의 1) 정도에 지나지 않지만, 모기 처지에서 보면 몸무게의 2∼4배에 이르는 양이다. 따라서 피 빨기를 끝낸 모기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필사적인 날갯짓으로 날지만 빠르고 멀리 날아가지 못해 위험에 노출된다.

암컷 모기에 비하면 수컷 모기의 삶은 덜 위험한 한편 우아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암컷 모기 가운데도 피를 빨지 않는 종류가 있다. 바로 왕모기(Toxorhynchites)다. ‘왕모기는 물지 않는다’는 말은 이 때문에 나온 것이다. 대부분 모기의 크기가 3∼6mm인 데 비해 왕모기의 크기는 19mm나 된다. 그런데도 왕모기는 주둥이 앞부분이 가늘게 구부러져 동물의 피부를 뚫을 수 없기 때문에 식물즙만 먹는다. 하지만 왕모기도 그다지 우아한 모기는 아니다. 유충시기에 다른 모기 유충을 잡아먹고 살기 때문에 다른 모기에게는 공포의 대상이다.

잘못 물리면 에이즈에 감염될 수도 있다?

모기가 무서운 건 우유 한 방울만한 피를 훔쳐가서도 아니고, 물린 뒤 가렵거나 따가워서도 아니다. 모기는 말라리아·뇌염 따위의 무서운 전염병을 옮긴다. 해마다 말라리아에 3억∼5억명이 감염되어 279만명이 죽는다. 이 가운데 3분의 1은 어린이다. 선사시대 이래로 전쟁과 자연재해를 제외하면 말라리아로 죽은 사람의 수가 전체 사망자의 50%나 된다. 모기의 살충제 내성은 최근 급속히 강해졌으나, 아직 말라리아 백신조차 개발되지 않았다.

모기는 이 밖에 사상충증·댕기열·황열 등을 옮기는 가공할 전염자다. 그러나 ‘다행히’ 에이즈는 옮기지 못한다. 모기가 빨아들이는 피는 그 양이 매우 적은데다 모기의 소화기관 안으로 들어간 HIV 바이러스는 그 안에서 번식하지 못하고 체내에서 분해되어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다. 만약 모기가 에이즈 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으면 우린 모기에 물리지 않기 위해 ‘전신콘돔’을 개발해 착용하고 다녀야 할지도 모른다.

겨울 모기는 슈퍼모기다?

모기 성충이 천수를 누리고 ‘자연사’한다고 해도 수명은 기껏해야 한달 정도다. 외부의 기온·습도·기상조건·천적 등의 여러 요인에 따라 평균수명은 5∼10일로 줄어든다. 그러나 온대지방에서 월동하는 모기는 6∼8개월이나 살아 있다. 다만 대사작용이 억제된 상태이기 때문에 정상적인 수명이라고 할 수는 없다.

모기 성충이 겨울을 나려면 따뜻한 공간이 필요한데, 인간의 주거환경이 바뀌면서 모기가 겨울을 날 수 있는 공간이 그만큼 많아져 겨울에 지하실 같은 곳에서 모기를 보는 것도 드문 일이 아니다. 흔히 모기는 지상 1∼2m 높이에 머물고 높게 날아오르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요즘은 고층 아파트에서도 흔히 모기를 볼 수 있다. 주로 엘리베이터와 계단 등을 통해 올라오지만, 서식환경 변화에 적응하는 모기의 능력은 놀라운 수준이다.

도움말=이원자 국립보건원 의동물과 연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