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류 전체보기

(440)
국회의사당에 원전을 짓자 경북 경주시 월성원전 1호기 앞 바닷가에 ‘지진해일 대피 안내판’이 서 있다. 경주/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는 수소전기차 충전소가 있다. 지난해 9월에 들어섰다. 수소전기차 충전소는 대표적인 기피시설이다. 정부의 목표는 지난해까지 전국 89곳에 설치하는 것이었으나, 주민 저항이 심해 여태 37곳에 머물러 있다.(8월 말 현재) 그런 기피시설이 지체 높은 국회 안에 설치돼 있으니 상징하는 바도 각별하다. 국회는 여염과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 나랏일 하는 이들은 사사로운 이유를 앞세워 공공시설을 기피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주기에 모자람이 없지 않은가. 더불어민주당이 국회의 세종 이전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압도적 다수 여당의 뜻이니 실현 가능성이 작아 보이지 않는다. 국..
이건희 회장의 슬기로운 신문 생활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을 기리는 대다수 신문의 영웅서사는 길고 곡진했으나, 또한 천편일률로 밋밋하고 납작했다. 고인 생전에 매서운 글맛 한번 보여준 적 없는 터에 사후라고 뭘 더 기대할까 싶으면서도, 한편으로 딱하다.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이들의 일편단심과 달리, 생전의 ‘임’은 이들의 서열을 살뜰히도 챙긴 듯하여. 중앙, 조선, 동아, 한국경제, 서울경제, 매일경제, 한국, 서울, 국민, 한겨레, 경향…. 이 회장에게 아침마다 오른 조간 스크랩의 순서다. 중앙이야 자기 신문이라 여겨 앞세웠을 테고 한겨레와 경향은 멀리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었겠으나, 경제지의 순서를 정한 기준은 짐작하기 어렵다. 스크랩을 만들어 올린 곳은 삼성경제연구소의 커뮤니케이션팀이었다. 그러나 세계 아이티(IT) 산업을 선도한다는 ..
김진숙의 두 목소리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김 지도) 목소리에는, 메시지와 별개로 듣는 이의 가슴에 긴 사이클의 울림과 초단파의 각성을 동시에 남기는 파장이 있다. 에이엠(AM) 주파수와 에프엠(FM) 주파수의 특성이 한데 어우러진 듯한 형질이다. 2011년 여름 ‘희망버스’ 타고 부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에 가서 처음 들은 지상 35m 타워크레인 위의 연설은, 분명 사람의 소리를 넘어서는 소리였다. 수없는 망치질과 담금질로 단련된 금속성의 쩡쩡한 울림이 또렷했으나, 그것은 또한 물질의 소리를 아득히 넘어서는 소리였다. 그해 내가 매번 희망버스에 오른 데는 그 소리의 이끎에 몸을 내맡긴 면도 없지 않았다. 그의 몸속에는 목소리와 관련된 비해부학적인 기관이 있을 거라고 지금도 상상한다. 비해부학적이라면 태생적이 아닌 생애사..
판도라 상자 앞에 선 BTS 뮌헨 국제음악콩쿠르 바순 2위 수상자, 헬싱키 국제발레콩쿠르 2위 수상자, 서울 국제무용콩쿠르 현대무용 2위 수상자, 동아무용콩쿠르 한국무용 1위 수상자,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 판소리 1위 수상자…. 이들의 공통점은 무얼까? 장르의 유사성 같은 데서 단서를 찾다가는 끝내 답을 알 수 없을 것이다. 이들은 모두 예술 특기자 병역특례 대상이다. 국제대회는 2위까지, (국제대회가 없는 분야의) 국내대회는 1위에게만 자격이 주어진다. 삼엄한 징병제를 가뿐히 뛰어넘는 대회들이지만, 운영 주체가 국가인 경우는 매우 드물다. 국내대회에서는 온나라 국악 경연대회만 국가(국립국악원)가 주최한다.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는 사단법인인 전주대사습놀이보존회가, 동아무용콩쿠르는 언론사인 동아일보가 주최자다. 적용 대상 대회는 ..
꼼수 ‘드라이브스루’의 개천절 능멸 개천절은 애초 민족종교인 ‘대종교’의 경축일이었다. 1909년 대종교를 연 나철 선생은 그해 음력 10월3일부터 해마다 개천절 행사를 거행했다. 이날은 서기전 2333년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건국한 날이다. 개천절은 그 뒤 임시정부에 의해 국경일로 지정됐고, 광복 뒤에는 정식 국경일이 됐다. 1949년 ‘국경일에 관한 법률’에 따라 양력 10월3일로 바뀌었다. 개천절은 3·1절, 광복절과 함께 3대 국경일이지만, 신도 수 4천명이 채 되지 않는 오늘날 대종교의 위상은 남루하다. 대종교의 ‘종’(倧)이 ‘신인’(神人·신이자 사람), 즉 단군을 뜻한다는 사실은커녕, 대종교가 어린이들도 다 아는 단군을 모시는 종교라는 사실을 아는 이도 많지 않은 듯하다. 대종교의 교세가 이토록 쇠한 데에는 외부요인이 결정적..
신전 위의 의사들 ‘당신과 당신 가족 눈에 피눈물이 나게 해주겠다.’ 전자우편은 이렇게 시작했고, 이 한 문장으로 끝났다. 발신인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날 쏟아져 들어온 성난 전자우편 수백통의 발신인들과 같은 부류인 것만큼은 모를 수가 없었다. 그날치 신문에 의약분업에 반발해 집단휴진 중인 의사들의 행태를 비판하는 글을 쓰고 난 뒤였다. 한동안 잊을 수 없었던 그날의 기억이, 꼬박 20년이 지난 요즘 어제 일처럼 생생한 떨림으로 다시 떠오른다. 그사이 한국 사회는 부침을 겪고 더러 뒷걸음질 치기도 했지만, 외신도 ‘촛불혁명’이라고 상찬한 대통령 탄핵까지 일궈낼 정도였던 그 시간을 진보라 부르지 못할 바는 없다고 본다. 의사들의 시간만큼은 예외다. 사람을 살리는 역능이 사람을 죽음 앞에서 방치하는 역능으로 뒤집히는..
코로나 시대의 불로소득 코로나19의 2차 대유행을 막기 위한 초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는 ‘방역’과 ‘약자의 생존권’을 맞교환하며 굴러가고 있다. 그러나 전쟁통에도 떼돈 버는 이가 있듯이, ‘비대면 업종’은 초호황을 누리고 있다. 올해 상반기 인터넷 쇼핑 같은 무점포소매 매출이 역대 최대인 46조2108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9.4% 증가한 것이다. 하반기에는 이조차 소박한 수치가 될 공산이 크다.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의 자산은 2020억달러(약 240조원)를 돌파했다.(미국 ‘정책연구소’(IPS)) 뉴질랜드의 연간 국내총생산(2069억달러)과 맞먹는다. 아마존 주가는 올해 86%나 뛰었다. 베이조스나 국내 전자상거래 1위 업체 쿠팡의 김범석 대표라고 해서 바이러스 창궐을 반겼을 리 없다. 그럼에도 ..
비판이 피해자를 만났을 때 고 박원순 서울시장을 성추행 혐의 등으로 고소한 피해여성을 대리하는 김재련 변호사(오른쪽 둘째)가 지난 6월13일 오후 서울 은평구 녹번동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실에서 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에서 경과보고를 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독일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의 치밀하기 이를 데 없는 ‘비판 시리즈’( )를 이해하기 위해 넘어야 할 첫번째 문턱은 책 제목이 아닌가 싶다. 오래전 선생도 멘토도 없이 홀로 머리 싸매고 책장을 넘기다 도돌이표처럼 이런 의문과 마주치곤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이성을 공격하는 내용도 아닌데, 왜 ‘비판’이란 제목이 붙었을까? ’독일어 ‘Kritik’(크리티크)를 번역하면 ‘비판’이 맞다. 은 ‘비판’을 “현상이나 사물의 옳고 그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