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발표글

김진숙의 두 목소리

김진숙 지도위원이 2011년 6월 부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서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 박승화 <한겨레21> 기자 eyeshoot@hani.co.kr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김 지도) 목소리에는, 메시지와 별개로 듣는 이의 가슴에 긴 사이클의 울림과 초단파의 각성을 동시에 남기는 파장이 있다. 에이엠(AM) 주파수와 에프엠(FM) 주파수의 특성이 한데 어우러진 듯한 형질이다. 2011년 여름 ‘희망버스’ 타고 부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에 가서 처음 들은 지상 35m 타워크레인 위의 연설은, 분명 사람의 소리를 넘어서는 소리였다. 수없는 망치질과 담금질로 단련된 금속성의 쩡쩡한 울림이 또렷했으나, 그것은 또한 물질의 소리를 아득히 넘어서는 소리였다. 그해 내가 매번 희망버스에 오른 데는 그 소리의 이끎에 몸을 내맡긴 면도 없지 않았다.

 

그의 몸속에는 목소리와 관련된 비해부학적인 기관이 있을 거라고 지금도 상상한다. 비해부학적이라면 태생적이 아닌 생애사적인 축적으로 이뤄진 기관이어야 할 터이다. 그가 금속 노동자 ‘출신’이라는 데도 한때 생각이 미쳤지만, 그의 금속성 목소리는 여느 전·현직 금속 노동자의 연설에서 들어보지 못한 소리다. 다른 목소리들은 크고 드높으나, 김 지도 목소리보다 둔탁하거나, 반대로 새되다. 김 지도 목소리가 고유한 데는 직업 이상의 무엇이 있었으리라. 그가 309일간의 고공농성을 마치며 먼저 내려보낸 방울토마토와 상추, 치커리 같은 푸성귀에서 목소리의 계보 한줄기가 언뜻 비쳤다.

 

김 지도의 초인적인 의지가 깃든 타워크레인은 금속으로만 이뤄진 구조물이다. 그러나 골리앗을 닮은 그 쇳덩이 안에서 그가 벗을 삼아 매만지고 돌보고 말을 건넨 대상은 작고 여린 녹색 생명체였다. 타워크레인과 푸성귀는 김 지도의 실존 안에서, 또한 목소리 안에서 이물감 없이 아늑하게 용해되는 알레고리다. 평생을 노동운동가로 살아온 김 지도는 어느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은퇴 뒤 녹색당에 가입해 텃밭을 가꾸는 것이 꿈”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적녹연맹’이라는 정치적 수사로는 온전히 설명되지 않는 그만의 됨됨이를, 그만의 노동운동 생애를 참조해 나는 겨우 짐작할 뿐이다.

 

김 지도는 한진중공업 최후의 해고자다. 최장기 해고자이기도 하다. 해고자로 살아온 삶이 올해로 옹근 35년이다. 1981년 국내 조선소 제1호 여성 용접 노동자가 된 그는 1986년 노조 대의원으로 활동하다 대공분실에 끌려가 고문을 받고 돌아와 그길로 해고됐다. 2003년 김주익, 곽재규 두 동지가 잇따라 숨지자 회사 쪽은 정리해고를 철회하고, 누적된 해고자의 전원 복직을 약속했다. 다만 김 지도를 제외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대자본은 그 작은 몸피의 여성을 유독 두려워했다. 2011년 타워크레인 농성 때는 자신을 아예 복직 요구 대상에서 제외했다. 정리해고 철회 투쟁에 걸림돌이 될 일말의 가능성마저 그렇게 스스로 차단했다.

 

돌봄과 연대는 그의 삶에서 본성처럼 어우러지는 윤리 같다. 2018년부터 암 투병을 하면서도, 지난해 12월에는 부산에서 일주일 동안 111㎞를 걸어 대구 영남대의료원을 찾았다. 그곳 옥상에서 복직 투쟁 중인 박문진(보건의료노조 전 지도위원)을 돌보고 연대하기 위해서였다. 박문진은 농성 227일 만인 올해 2월 복직했다. 309일 고공농성을 마친 김 지도는 “당장 캄보디아에 가고 싶다”고 했다. 캄보디아에는 그의 에스엔에스 프로필 사진 속의 아이가 산다. 2010년 현지에서 한번 만난 아이와의 관계를, 그는 후원 관계가 아닌 “특별한 인연”이라고 짚는다.

 

그런 김 지도가 생애 최초로 ‘이기적인’ 투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여름 자신을 위한 복직 투쟁을 시작했다. 그의 오랜 돌봄이 돌고 돌아 비로소 그 앞에 당도했다. 지역의 노동계와 정치계가 연대하고 나섰다. 올해 예순인 그는 연내에 복직해도 곧바로 정년을 맞는다. 해고 전에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구내식당의 온기 나는 밥과 국을 먹어보고 싶고, 먼저 간 동지들의 쓸쓸한 자취도 살피고 싶다는 그의 작고 여린 꿈은, 퇴임 뒤 텃밭을 가꾸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할 과정일 터이다.

 

김 지도는 20일 옛 동지(민주노총 지도위원)인 문재인 대통령 앞으로 공개편지를 띄웠다. 함께 투쟁했던 기억을 회상하는 대목과 그 동지가 대통령이 됐음에도 부당 해고 문제가 풀리지 않는 현실을 질타하는 대목이, 울림과 각성이 하나 된 목소리로 음성 지원 되듯 읽힌다. 그의 편지는 답장이 되어 돌아올 수 있을까.

 

※ <한겨레> ‘아침 햇발’에 실린 글입니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66515.html

 

[아침 햇발] 김진숙의 두 목소리 / 안영춘

안영춘 ㅣ 논설위원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김 지도) 목소리에는, 메시지와 별개로 듣는 이의 가슴에 긴 사이클의 울림과 ...

www.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