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

(440)
언론이 법원 판결을 ‘활용’하는 풍경들 매개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왜곡한 뒤 두고두고 확대재생산 법원의 판결 결과는 대개 개인에게 귀속되지만, 결국 사회적 규범을 규정하는 구실까지 하게 된다. 이때 법원과 사회를 매개해주는 것은 역시 언론이다. 그만큼 언론의 판결 보도와 해석은 정확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고, 오히려 언론이 의도적으로 왜곡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1997년과 2002년 대선 당시 이회창 후보 두 아들의 병역 비리 의혹이 큰 논란이 됐었다. 이와 관련해 대법원은 2004년 병무 비리 전문가 김대업씨에게 무고와 명예훼손 등으로 징역 1년10월을 선고했다. 대다수 언론은 김씨를 ‘공작정치의 대가’라고 낙인찍었다. 그 낙인은 2007년 대선에서 “BBK 의혹 역시 공작정치”라는 정치선전에 동원됐다. 그러나 김씨가 ..
모기는 섹시한 사람을 좋아해? 적을 알아야 승리한다…그 작고 사악해 보이는 생물체에 대한 몇가지 궁금증 난 몸에 열이 많습니다. 어려서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고, 성인이 되어서 과하게 몸을 혹사하며 살다 보니 체질이 변한 것 같습니다. 땀도 심하게 많이 흘리게 됐습니다. 오늘도 동네 뒷산을 두어 시간 오르내렸는데, 웃옷은 물론이고 바지 허리춤까지 소금띠가 앉더군요. (어떤 이는 그런 나를 ‘물탱이’라고 불렀습니다.) 몸에 열이 많고 땀을 많이 흘리면 모기의 공격 대상이 됩니다. 일러 ‘인간 모기향’이지요. (물론 그런 사람만 모기에 잘 물리는 건 아닙니다. 나를 ‘물탱이’이라 불렀던 이는 오히려 몸이 차갑고 건조한 편인데, 함께 있으면 나보다 모기에 더 잘 물렸습니다. 아마 모기가 특정한 체취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일 겁니다.) 날씨..
검찰이 노래를 부르면 조·중·동은 춤을 추네 미네르바의 표현의 자유와 시민권 박탈 앞장선 수구언론들 는 ‘장자연 리스트’ 사태 맞자 이중적 태도로 돌변 ※ 이 글은 2009년 5월1일자 758호에 실린 글입니다. 법이 ‘해석’의 놀음이라면 기사는 ‘야마’(기사의 주제와 문제 설정 정도를 뜻하는 언론계의 일본말 은어)의 놀음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법이 해석 과정에서 타락해버린 실태를 겨냥한 약자들의 절규나 저주다. 언론에서 야마는 팩트(사실)를 비추는 거울이다. 평면거울일 수도 있지만 볼록거울이거나 오목거울일 때도 많다. 불가피할 때도 있지만 의도적일 때도 많다. 정치 검찰은 자의적인 법 해석으로 억울한 피해자를 양산하고 비뚤어진 언론은 자의적인 야마를 통해 진실을 왜곡한다. 둘 다 틀과 방향을 미리 정해놓고 거기에 사실을 꿰어맞추는 것도 닮..
유명환과 유인촌은 경우가 다르다 민주당의 반응은 지나친 게 아니라 번지수가 틀렸다 고등학교 쉬는 시간에 까까머리 사내녀석 둘이 교실 한귀퉁이에서 담임 선생님을 흉본다. “우리 담탱이 미친 놈 아냐?” 그러다 열린 문으로 슬쩍 들어온 선생님한테 들키고 만다. 당신이 그 선생님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군사부일체”를 운운하고 “교권이 땅에 떨어졌다”고 개탄하다 “내일까지 부모님 모시고 와”라고 할 텐가, 아니면 속으로 분을 삭이며 못 들은 척할 텐가?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같으면 곧바로 주먹과 발길을 날렸을 테지만, 폰카와 인터넷 하나면 기록하고 전파하지 못할 것이 없는 요즘 세상에 그럴 수는 없을 테고…. 이런 방법도 있지 않을까 싶다. 나지막히 말하는 거다. “담탱이 욕하는 놈 치고 정신 멀쩡한 놈 못 봤다.” 아니면, “한 번 봐준..
조선일보, 경찰, 코페르니쿠스, 그리고 칸트 [미디어스 데스크] 미디어스 사이트 개편에 부쳐 1. 가 ‘오랜만에’ 탤런트 고 장자연씨 자살 사건을 대서특필했습니다. 경찰의 중간 수사 결과 발표 다음날인 지난 25일이었습니다. 1면 사이드 기사와 함께 8~9면을 털고 사설까지 동원해 도배를 했습니다. 그 많은 내용 가운데 7할이 조선일보의 “자사 특정 임원”과 관련한 내용이었습니다. 다른 언론들이 ‘○○일보 ○ 사장’이라고 표기해왔던 바로 그 인물 말입니다. 그동안 조선일보는 “자사 특정 임원”이 장자연 리스트에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한 차례도 스트레이트 기사로 보도한 적이 없습니다. 다만 자기네가 국회의원 아무개 아무개와 일반시민 아무개 등을 고소했다는 기사나, 자사 임원에 대한 터무니없는 모함인 게 밝혀지면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아야 할 것이..
촛불 1년, 위험사회서 별일 없이 살기 [촛불 1년 특집] 프롤로그 의 입소문이 하도 자자하기에 나도 한 번 들어봤다. 관객 천만이 넘는 영화는 부러 피해가고, 그래서 독립영화계의 블록버스터라는 도 언제 볼지 기약할 수 없지만, 장기하의 노래는 돈 한푼 안 들이고 인터넷 검색으로 단 몇분이면 들어볼 수 있으니, 무슨 결벽증이 아니고서야 안 들을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결심한 게 앨범 발매 근 두 달 만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듣는 것도 저작권 침해인가? 별일 없겠지?) 들어보니 귀는 그다지 즐겁지 않고, 다만 키치적 가사가 재미있었다. 이걸 송창식이 불렀던 의 21세기 버전이라고 봐도 되나 모르겠다. 둘다 반어적 가사이긴 한데, 송창식은 절규하는 듯하면서도 하회탈 같은 눈웃음을 치고, 장기하는 무표정에 하품하듯 읊조리다 버럭 소리를 지르는 정..
앵커와 예능프로 진행자의 다른점 ‘사실’ 너머 ‘실체적 진실’ 내비쳐야 ‘땡전뉴스’로 복귀 않을 것 앵커와 아나운서가 어떻게 다르냐는 질문은 웬만해선 대놓고 하지 않는, 그렇다고 웬만해선 딱 부러지게 답을 알고 있지도 않은 질문이다. 가장 간명하게 설명하자면, 앵커는 ‘업무’이고 아나운서는 ‘직종’이다. 앵커는 기자가 하기도 하고 아나운서가 하기도 한다. 개국 초 SBS는 영화배우가 하기도 했다. 아나운서는 방송사의 채용직종, 즉 기자, 피디, 기술, 행정 같은 카테고리 가운데 하나다. 그러니까 앵커와 아나운서가 어떻게 다르냐는 질문은 성립하지 않는다. 아버지와 교사가 어떻게 다른지 비교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앵커는 뉴스 진행자다. 여기서 방점을 찍어야 하는 부분은 ‘진행’이다. 정해진 뉴스 꼭지를 순서대로 읽어나가는 건 ‘진행’이라..
“○○일보 ○사장”, 풍자가 된 모자이크 / 정정훈 변호사 ※ 4월16일치 여론면 ‘야!한국사회’에 정정훈 변호사가 쓴 글입니다. 정 변호사는 제가 쓴 글을 한 단락 인용하였는데, 인용한 글 원문(▷ 조선일보판 '벌거벗은 임금님', 장자연 리스트)에는 저와 정 변호사가 얘기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마주본 거울 사이에 들어와 있는 느낌입니다. “○○일보 ○사장”, ‘중요 부분’은 다 가렸다. 그러나 가려진 그 ‘중요 부위’를 대부분 보았고, 알고 있다. 정작 ○○일보는 이 빈칸을 채우는 행위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경고를 보내며, 스스로 그 빈칸의 주어가 된다. 기괴하다. 뿌옇게 모자이크 처리된 사건에서 음모론이 스멀거린다. 주어가 된 는 장자연씨의 리스트 작성에 배후가 존재하고, 사주받은 행위일 가능성이 있다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나는 고민이 깊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