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440) 썸네일형 리스트형 전향 엘리트들의 강박적 망언 ‘전향’이라는 말이 쓰이기 시작한 지는 채 100년도 되지 않았다. 그 기원은 1922년 일본공산당 창립에 참여했던 야마카와 히토시가 그해 잡지 에 발표한 ‘무산계급운동의 방향전환’이라는 논문이다. 이후 ‘방향전환’은 ‘전향’이라는 축약어로 널리 쓰였다. ‘변절’의 뉘앙스는 없었다. 오히려 운동의 ‘참된 방향전환’이라는 맥락에서, 능동적 주체가 변증법적 전화 원리에 적극적으로 적응해가는 ‘자기 지양’의 의미가 강했다. 전향이 부정적 의미를 띠기 시작한 건 1930년대 들어서다. 사상경찰은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이 개념을 급진파 학생들의 생각을 순치하는 도구로 활용했다. 관련 기술을 고안해 책자를 발행하고, 체포·구금된 학생들에게 써먹었다. 전향은 ‘자기 지양’에서 ‘투항’으로 바뀌어갔다. 그러나 살이.. 미세먼지와 바이러스 안경은 마스크 위쪽 틈새로 빠져나온 후텁지근한 입김을 뽀얗게 뒤집어썼으나, 그 너머로 거짓말처럼 파란 하늘이 올려다보인다. 1년 전 이맘때 ‘시계 제로’의 어둡고 탑탑했던 하늘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지난해 초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한 온갖 대책이 쏟아졌지만, 대책 목록 가운데 ‘바이러스’는 들어 있지 않았다. 어느 전문가도 상상하지 못한 일을 코로나19가 해낸 것인가. 그러나 지난해에도, 또 올해도 우리는 마스크를 얼굴 높이 올려 쓰고 있다. 올봄 저 파란 하늘이 일러주는 가장 명징한 메시지는 초미세먼지 사태가 ‘사람의 일’이라는 사실이다. 사람들의 일상과 사람 집단의 산업 활동이 달라지자 공기도 달라졌다. 중국으로부터의 영향 감소도 그곳 사람들의 일상과 산업 활동이 달라진 데에 깊이 닿아 있을 터이다. 코.. 표창장이 필요한 사람들 ‘조국 정국’을 대분류하면 절반은 ‘표창장 정국’이다. 논문 교신저자나 연구소 인턴 문제는 그 하위범주로 분류하면 된다. 핵심은 ‘조작’ 여부다. 대한민국 정치권과 검찰, 언론은 물론 온 국민까지 사생결단으로 이 문제에 매달려왔지만, 그 와중에 난 한갓지게 ‘표창장이란 무엇일까’를 고민했다. 고맙게도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조국 장관 낙마 표창장’으로 고민을 덜어줬다. 표창장이란 본디 부조리거나, 역설이거나, 한바탕 소극이었다. 표창장이 폭포수처럼 쏟아질 때가 더러 있다. 4대강 사업 유공자로 표창장을 받은 이는 1152명이다. 수자원공사, 국토부, 환경부, 국방부 등에서 녹봉을 먹는 이가 가장 많다. 강을 파헤치고 막으면 물이 맑아진다고 했던 학자들이 뒤를 잇는다. 영주댐 사업을 담합해 처벌받은.. 제작기가 더 극적인 쿠르드 영화, ‘욜’ 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자 국내 언론들은 “한국 영화의 쾌거”라고 썼다. 영화제가 국가대항전은 아니지 않은가. 그런 번연한 사실을 극적으로 깨우치는 영화가 있다. 은 1982년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터키 영화 사상 처음이었다. 그러나 영화를 만든 이을마즈 귀네이 감독은 트로피를 받지 못했다. 터키 군부가 그를 살해하려고 현지에 요원들을 보낸 탓이다. 봉준호 감독이 들으면 모골이 송연해질 이야기다. 은 영화 외적인 부분이 더 영화 같은 영화다. 귀네이 감독은 시나리오를 교도소에서 집필했다. 촬영은 조감독 셰리프 괴렌에게 맡겼다. 편집은 다시 귀네이 감독 몫이었다. 그는 탈옥해 스위스로 망명했고, 그곳에서 영화를 완성해 칸 영화제에 출품했다. 심사위원들이 작품성보다 그의 목숨 건 노력을 높이 사서 상을.. 조국 촛불, 그 말줄임표와 물음표 개인 용무로는 갈 일이 없는 서울 서초동을 지난 토요일 오후에 찾아갔다. 계절이 바뀌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조국 정국에 대해 희미한 실마리라도 찾을 수 있을까 싶어서였다. 집회 참가자 수가 실마리가 될는지 모르겠으나, 거대한 인파는 그날 집회의 가장 명백한 특징이었다. 지금도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들끼리 ‘페르미 기법’을 들먹이며 만 단위와 백만 단위 사이에서 날 선 숫자 공방을 벌이고 있지만, 그 규모가 저마다의 예상을 크게 넘어선 사실은 어느 쪽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집회 풍경은 2008년 미국산 쇠고기 반대 집회에서 2016~2017년 박근혜 하야 집회로 이어져온 그것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았다. 동원된 집회에서는 듣기 어려운 현장 구석구석의 ‘지방방송’도, 인파가 쉼 없이 밀고 써는 주변부의 .. 대학교수 시국선언 실명제 말년에 미셸 푸코가 주목한 그리스어 ‘파레시아’(parrhesia)는 직역하면 ‘모두 말하기’이지만, ‘용기 내어 진실 말하기’ 정도의 개념으로 쓰인다. 부분적 사실만을 말하면 진실에서 멀어지는 원리와, 진실에 부합하는 모든 사실을 말해도 환대받기 쉽지 않은 현실을 겉과 속으로 아우른 듯하다. 특히 진실 말하기는 권력자의 노여움을 사기 마련이다. 사마천은 궁형을 당했고,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종교재판에 회부돼야 했다. 근대 이후로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에밀 졸라는 1898년 드레퓌스 재판을 겨냥해 ‘나는 고발한다’를 쓰면서 자신이 40년 동안 쌓아온 권위와 명성을 걸겠다고 했으나, 정작 걸지도 않은 생명까지 위협받아야 했다. 진실을 말하고 외려 손가락질받는 일은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도 여전하다... 조국은 이럴 줄 몰랐을까 며칠 전 큰딸이 지나가듯 말했다. “아빠보다 딸이 너무 안됐어. 나라면 못 견뎠을 거야.” 같은 20대 여성에 대한 연민 때문인지 타고난 품성 때문인지 알 수 없으나, 그녀가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딸과 학벌을 겨룰 위치에 있지 않은 것만은 확실하다. 그녀는 전문대에서 미용을 전공하고 극한노동의 3년 인턴 생활을 거쳐 지금은 주6일을 야근하는 미용 노동자다. 애초 ‘분노’나 ‘허탈’ 같은 감정의 자장 안에도 들지 못해 저러는가 싶어 나대로 가슴 한구석이 먹먹했다. 수도권 대학에 다니는 작은딸은 이 사태에 아예 시큰둥하다. ‘정치 냉담자’라 하기에는 십대 때부터 이런저런 집회를 열심히 쫓아다니던 모습과 전혀 딴판이다. 궁금했으나 묻지는 못한 채, 그저 그녀 주변의 공전 궤도를 따라 하릴없이 돌기만 하고.. 탄소 줄이고 돈도 버는 ‘생태배당’ 기후위기에 대응하려면 탄소 배출을 줄여야 한다는 건 도널드 트럼프나 자이르 보우소나루 같은 몇몇 권력자 말고는 다 아는 상식이다. 그러나 이를 위한 개인의 실천이나 정책의 실행 앞에는 심각한 딜레마가 놓여 있다. 첫째, 나는 덜 배출해도 남이 더 배출하면 지구는 갈수록 뜨거워지고, 그 결과는 에어컨 없이 버티는 내게 전가된다. 둘째, 수요관리를 위해 요금이나 세금을 올리면 소득이 낮은 계층일수록 더 큰 고통을 받는다. 프랑스 ‘노란 조끼’ 시위가 유류세 인상에 반발하는 저소득층에 의해 촉발된 사정도 거기에 있다. ‘정치경제연구소 대안’의 최신 보고서(조혜경 연구위원)는 이런 “환경과 민생의 대결구도”를 재구성할 수 있는 대안으로 스위스의 ‘탄소세 생태배당 모델’을 소개했다. 스위스는 2008년부터 난방용.. 이전 1 ··· 9 10 11 12 13 14 15 ··· 5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