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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글

‘여론 다양성’에 대한 다양한 시선

이름값 높은 연예인이나 예능 피디가 거액을 받고 종합편성채널(종편)로 간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들린다. 하지만 급박하게 돌아가는 건 그 쪽이 아니다. 기자 영역은 가히 엑소더스 수준이다. 수도권의 지역 민방 보도국은 정상적인 뉴스 제작이 어려울 만큼 많은 인력이 종편으로 자리를 옮겼다고 한다. 인력 유출이야 무슨 수로든 메울 수 있지만, 종편 출범과 함께 맞게 될 광고 매출 감소는 당장 지역 매체들을 생존의 위기로 내몰 거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애초 정부와 조·중·동의 종편 허가 논리는 ‘여론 다양성 높이기’였다. 방송3사의 여론 지배력이 너무 높기 때문에 방송사 몇 개가 더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관변 언론학자들이 언죽번죽 엄호했다. 이들이 교묘한 이론과 통계를 제시하면 조·중·동이 확대재생산했다. 이들의 주장은 여기저기서 간단히 반박됐다. 여론 다양성이 높아지기는커녕 가뜩이나 취약한 풀뿌리 언론이 멸종될 것이라는 반박도 그중 하나였다. 조·중·동은 이에 철저히 침묵함으로써, 자신들의 여론 지배력을 역설적으로 과시했다.

여론 다양성을 이해하려면 그 이름만큼이나 ‘다양한’ 접근이 필요하다. 정부와 조·중·동 식으로만 접근하면, 신문의 독자에 견줘 시청자가 훨씬 많은 방송이 여론의 지배자다. 그러나 여론은 단순 정보와 다르다. 매체 영향력에 관한 전문가 조사에서 <조선일보>는 언제나 <KBS>와 수위를 다툰다. 신문의 의제 설정력이 방송을 앞서기 때문이다. <조선일보>의 주요 독자들이 일반 시청자들보다 구매력이나 영향력에서 앞서는 것도 이유가 될 수 있다. <조선일보>의 보도를 방송들이 받아 보도한다면 정작 조선일보의 의제가 확산되는 셈이다.

이 신문이 한때 ‘밤의 대통령’을 자처할 수 있었던 사정이 거기에 있다. 물론 그들이 말하는 ‘잃어버린 10년’ 동안에는 녹록지 않았다. 방송들이 나름대로 제 목소리를 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 옛날이여!’를 외쳤을 법도 하다. 하지만 ‘잃어버린 10년’이 다시 ‘옛날’이 된 지금, 조·중·동과 방송들은 다시 대부분의 사안에서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아니, 이들 신문이 방송사 내부까지 깊숙이 지배하고 있는 징후마저 보인다.

<MBC> ‘PD수첩’의 미국산 쇠고기 편이 대법원에서까지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이들 신문은 일부 사실과 다른 보도가 있었다는 점을 들어 ‘사실상 유죄’라는 궤변을 폈다. 그리고 <MBC> 사장은 같은 궤변으로 ‘PD수첩’ 제작진에게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이런 구조에서 조·중·동 방송을 100개를 만든들, 여론 다양성은 높아지지 않는다. 오히려 여론 블랙홀만 더욱 거대해질 것이다. 지금 그들이 지역 민방 기자들을 무섭게 빨아들이는 것과 같이.

※ <한국방송대학보>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