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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글

‘도가니’에 관한 저널리즘적 성찰

영화 한 편이 세상을 뒤흔들고 있다. 흥행의 문제가 아니다. 1천만 관객을 불러 모으는 작품이 그리 드물지는 않지만, 영화가 다룬 ‘사실’(팩트)에 사회 전체의 눈과 귀가 쏠리기는 <실미도>(2003) 이후 처음인 듯하다. <도가니>는 상업성을 띤 극영화임에도 사실을 재현했다는 면에서 다큐멘터리의 고유한 영토인 ‘영화 저널리즘’을 성취했다고 볼 수 있다.

언론인 처지에서 관심이 가는 것도 이 대목이다. ‘사실 재현’의 적자를 자부하는 저널리즘이 해내지 못하는 것을 ‘허구’(픽션)의 영역에서 탁월하게 해내는 것을 보면 한계를 절감하게 된다.

사회 여론은, 심지어 그 여론에 의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사회 시스템조차 이성보다는 감성과 정서에 더 강하게 지배되기 때문이지도 모르겠다. 사실, 대의제 민주주의뿐 아니라 그것의 소통 시스템인 저널리즘은 이성의 정언(定言)을 따르는 고도로 정치화된 인격적 주체를 전제하지만, 현실은 거의 언제나 이런 기대를 배반한다. 그렇지 않다면 지성지로 정평이 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가 최고 부수를 자랑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대의주의자들의 이상이 실현되지 않았다고, 우리가 갑자기 무정부주의자가 될 수는 없다. 대의제라는 과두적 시스템을 전제하지 않은 직접 민주주의로는 사회가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 대의제와 직접 민주주의는 숙명적 길항관계로 묶여 있다고 봐야 한다.

문제는 대의제, 나아가 저널리즘 내부의 취약성이다. 주체의 능력이 모자라는 건 가르쳐서라도 채워갈 수 있다. 그러나 내부 구조와 윤리의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저널리즘 차원으로만 좁혀 보면, 정치적 이해와 상업적 이해가 저널리즘의 정언 실현을 추구하는 주체의 발목을 붙잡고, 대의 수탁자(독자와 시청자)의 이해를 배신하도록 한다.

주류 매체의 탐사 저널리즘이 갈수록 퇴조하는 현상은 상업적 이해관계와 깊이 닿아 있다. 시간과 돈은 많이 드는데 그만한 수익으로 환원될 가능성은 적다 보니 탐사 저널리즘을 기피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자신부터 기득권자인 언론이 강자를 위한 정치적 입장에 서는 것이 더 본질적인 문제다. 감춰진 진실을 파헤치는 탐사 저널리즘은 경향적으로 약자의 이해를 대변한다.

광주 인화학교는 사회복지법인이 운영하는 특수학교다. 지난 정부가 특수학교와 사회복지법인의 족벌 운영을 견제하자고 공익이사제를 핵심으로 하는 사회복지법 개정을 시도했으나, 지금의 여당과 족벌 신문들이 “제2의 사립학교법”이라며 반대해 실패하고 말았다. 지금 내가 비감한 것은 ‘사실 재현’에 있어서 저널리즘의 한계 때문이 아니라, 이제 와서 인화학교와 관련한 것이면 뭐든 언죽번죽 기사를 써대는 그들의 기회주의를 지켜봐야 하기 때문이다.


※ <한국방송대학보> 2011년 10월 10일자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