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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글

‘자본주의 4.0’의 복화술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드디어 끝났다”라고 쓰려는 순간, 다시 일이 터졌다. 한쪽이 충격을 받을 때 다른 한쪽은 쾌재를 부르는 제로섬의 순환구조인 걸 보면, 무상급식 문제는 사실상 진영의 정치적 이해에 종속된 무늬만 복지 의제라고 하겠다. 주민투표가 끝나자마자 검찰이 피의사실을 흘리고 나선 것 자체가 가장 적극적인 정치행위였다.

진실의 문제를 떠나, 이런 식의 ‘정치 과잉’은 곧 ‘담론 부재’와 이면관계에 있다. 무상급식은 여태 상징의 깃발만 나부끼는 불모의 의제였다. 무상급식을 하면 나라가 거덜날 것처럼 떠들어대는 목소리에서는 이성의 풀싹조차 찾아볼 수 없지만, 그 반대 진영이라고 해서 무상급식 ‘너머’를 제대로 통찰했는지는 의문이다. 설령 전략적 선택이었다 해도, 선별급식의 대응 논리가 ‘낙인찍기 우려’에서 더 나아가지 못한 건 딱하다.

다들 눈앞의 정치에 빠져 있을 때, 여러 수를 내다보고 돌을 놓은 건 <조선일보>였다. 조선일보는 지금까지 16차례에 걸쳐 ‘자본주의 4.0’이라는 시리즈를 연재했다. 영국의 저널리스트 아나톨 칼레츠키가 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자본주의 4.0’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더는 정상작동을 할 수 없다고 못박는다. 이 시리즈가 나열하는 ‘사실’(팩트)은 심금을 울린다. 자영업자 중 절반이 넘는 300만 명이 월 100만원도 못 번다고 가슴아파한다.

‘자본주의 4.0’의 조선일보는 낯설다. 주요 독자층에서는 “조선일보가 빨갱이가 됐다”는 탄식까지 터져 나온다. 하지만 오독이다. 이 기획은 향후 정치 일정에서 헤게모니를 재생산하기 위한 복화술이다. 지금처럼 고용 불안과 양극화가 심화된 상태에서 신자유주의 논리만 되풀이하면 필패한다는 상황 인식은 정확하다. 그러나 결론은 제도적 복지 확대가 아니다. 기업이 주도하는 시혜적 문화 조성이다. 그리고 주장한다. “이것은 완전히 새로운 자본주의”라고.

이 그럴싸해 보이는 결론의 화살은 처음부터 무상급식, 나아가 보편복지를 겨냥하고 있었다. 보편복지를 반대하는 건 약자에게 잔인해서가 아니라 실효성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조선일보의 시리즈는 벌써부터 의제설정의 힘을 발휘하고 있다.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반복지포퓰리즘 공생발전’으로 화답했다. 서울시장도 자신의 퇴임에 대해 “과잉복지를 염려하는 역사적 상징”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런데도 진보 언론에서는 삶의 구체성에 다가서는 팩트를 조선일보보다 오히려 찾아보기 힘들다. 약자를 위한 진짜 정치적 담론은 없고, 서울시장 선거 얘기뿐이다. 그 사이 그들의 단골 논객들은 ‘자본주의 4.0’ 시리즈에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무상급식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 <한국방송대학보> 제1642호(2011년 9월 5일자)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