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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발표글

사랑하라, 바로 지금

  -MBC 베스트극장 ‘새는’을 보고



   사랑했던 이의 부음을 접하는 상진의 모습은 뜻밖에 담담하다. 지금, 사랑의 열병을 한창 앓고 있는 그대는 먼 훗날 상진의 처지가 되었을 때 그처럼 홀연히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날 수 있을 거라고는 차마 생각지 못할 것이다. 미소까지 살며시 머금은 그를 보며, ‘상진의 사랑은 진짜 사랑이었을까’ 의문을 품어봄 직도 하겠다. 하지만, 그런 의문 따위는 집어치워라. 사랑의 모습은 어느 것 하나 정형화되지 않느니, 그대가 경험한 사랑은 다른 사랑에 대해 어떤 판단의 잣대도 되어주지 못한다. 사랑이란 본디 그런 것이다.

   상진의 사랑은 외사랑이었다. 외사랑의 주체이자, 외사랑의 대상. 그의 사랑에는 세 사람이 관계되어 있지만, 흔한 신파의 삼각관계는 아니었다.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마주 보지 못하는 한, 관계의 삼각형은 그려지지 않는다. 어느 한 사람은 멀리 앞만 내다보고, 또 한 사람은 그 사람의 뒷모습만 응시하고, 나머지 한 사람은 앞의 두 사람의 뒷모습을 각각 엇갈리는 감정으로 응시했을 따름이다. 기하학적 면적을 산출할 수 없는 그들 셋의 선형적 관계는, 그래서 처음부터 ‘쿨’했던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 관계의 참모습은 거기에 있지 않다. 그들의 시선에는 마주침이 없었으나, 그것이 곧 공허를 의미하지도, 누군가의 비극을 의미하지도 않았다. 상진에게 사랑은 자신을 타자화하는 거울이었다. 상진은 은서의 눈에 들기 위해, 은서의 눈이 되어 자신을 돌아보았다. 살면서 한 번도 진지한 성찰의 기회가 없었던 그였다. 사람이되 박제였고, 청춘이되 그림자였던 17년이었다. 박제와 그림자는 사랑에 눈뜨면서 비로소 숨과 피를 얻었고, 부피와 질량을 획득했다. 그런 상진을 외사랑하는 현주는, 사랑하는 사람의 사랑을 가로막는 훼방꾼이기는커녕 성실하고 능력 있는 사랑의 멘토였다.

   그들 셋의 관계가 고유한 건 바로 이 때문이다.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의 역할모델이 되고 누군가의 멘토가 되는 관계는 세상살이에서 흔하게 목격되지만, 그 관계가 이성간의 사랑, 그것도 제가끔의 시선으로 어긋나는 세 사람 사이에서 형성되는 것이라면 의미는 사뭇 달라진다. 그들의 관계는 양쪽 끝이 떨어져 영영 닿을 수 없는 선형적 관계라기보다는, 안과 밖의 분별을 넘어서 하나로 이어진 뫼비우스 띠를 닮아 있었다. ‘삼각형이냐 아니냐’ 하는 신파적 물음은 처음부터 물을 수 없는, 물을 필요가 없는 물음이었다.

   도대체 우리는 이성간의 사랑이 ‘생산적’일 수 있다는 가정을, 정자와 난자가 수정을 거쳐 X 염색체와 Y 염색체로 배열된 생명체를 만들어내는 생물학적 과정 말고는, 다른 데에 적용해본 적이 있기라도 한 걸까. 사정이 그러하니 청소년의 사랑을 허튼 불장난이거나, 기껏 해야 “나중에 해도 늦지 않을” 유예 가능한 취미생활로 치부하는 것도 너무나 정연한 논리적 귀결이 아니겠는가. 그런 식이라면, 이 드라마의 메시지는 ‘연애질은 오히려 학업에 도움이 된다’인가? 묻고 나니 우습다.

   사랑은 정형화할 수 없지만, 어른들의 사랑은 정형화의 길을 걷는다. 어른들이 만든 사랑의 공식은 원리의 이해보다는 암기가 필요한 공식이다. 그 공식은 상진과 은서, 현주의 사랑 방정식에 어떤 해법도 내놓지 못한다. 그들 셋은 청소년 시절, 제가끔의 시선으로 서로를 응시했고, 그래서 나름의 공식을 만들어냈다. 청소년의 사랑은 허튼 불장난도 아니고, 유예 가능한 취미생활도 아니다. 청소년의 사랑에 대한 그런 견해는 폐기되어야 마땅한 나이주의의 유물일 뿐.

   사랑했던 이의 부음을 접한 상진의 담담함은 세월에 빚진 것도 아니고, 사랑이 빛바랜 탓도 아니다. 뫼비우스의 띠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사랑도 그와 같다. 은서와 마주볼 수 없음을 알고 밤길을 달음질치던 상진과, 상진과 마주볼 수 없음을 알고 버스 창가에서 눈물짓던 현주에게 사랑은 미완의 끝이 아니었다. 안팎을 오가는 변주의 시작이었을 뿐, 그들은 비로소 그렇게 어른이 되었다. 그대도 십수년의 세월이 흐른 뒤 시간여행을 떠날 때, 서늘하되 결코 허허롭지 않을 그런 사랑을 해보라. 낯선 자신의 모습을 찾아, 바로 지금.

                                                                                                                                         (2006년 9월12일)

* 이 글은 <아내가 결혼했다>의 작가 박현욱씨가 쓴 <새는>이라는 소설을 각색한 드라마를 보고 쓴 것입니다. 발표할 목적은 없었는데, 격월간지 <싱클레어> 편집장인 김용진님이 그해 가을 책에 실어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