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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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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우면 이직하든가’의 공정성 나는 요즘 치밀하게 연출된 몰래카메라에, 그러니까 성착취 동영상이 아니라 30년 전 어름에 개그맨 이경규가 인기몰이했던 그 몰카에 혼자 속고 있는 게 아닌가 착각이 든다. 한국토지주택공사(엘에이치) 내부자들의 땅 투기 의혹에 대한 한국 사회의 집단 분노와 관련돼 있다. 발본색원, 일벌백계, 투기수익 몰수, 물샐틈없는 방지 대책의 필요성에 이백 퍼센트 동의한다. 그러나 집단 분노의 수위나 밀도와는 마음의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다. 혹 이상한 사람으로 비치지 않을까 부러 분노를 표출하는 순간, 나를 향해 일제히 “속았지” 하며 박장대소할 것만 같다. 참여연대와 민변이 엘에이치 내부자 10여명의 광명·시흥 신도시 예정지 투기 정황을 처음 폭로했을 때, 한국 사회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는 듯 경악했다. 육하원..
‘내 집’인가 ‘내집’인가 ‘즐거운 나의 집’과 달리 ‘내 집 마련’이라고 할 때는 ‘내’와 ‘집’을 붙여 쓰는 관행이 있다. 심지어 ‘내집마련’으로 복합명사처럼 쓰기도 한다. 집에 대한 집단적인 소유 욕망이 띄어쓰기 맞춤법을 넘어선 결과일 것이다. ‘빈 집’ 대신 ‘빈집’이 처음부터 맞춤법은 아니었을 테고, ‘짜장면’이 어느 날 ‘자장면’과 동렬에 올랐듯이, ‘내집’도 머잖아 표준어로 등재되지 않을까. ‘내 집’은 사용 개념이고, ‘내집’은 소유 개념이라는 국립국어원의 뜻풀이와 함께. 그러나 사용 개념으로서의 집이 어느덧 사멸하고 나면, ‘내 집’도 결국 사어가 될 것이다. 조삼모사의 정부 주택 정책을 겨냥한 최신 버전의 구호는 “실수요자 외면 말라!”다. 여기서 ‘실수요’가 서울, 그중에서도 강남과 ‘마용성’ 등에 집중된다는 ..
기울어진 운동장에 정의는 없다 18년 만의 혹한 기록이 연일 경신되던 며칠 전 출근길, 숨을 헐떡이며 실외 승강장에 막 내려서려는 순간 전동차 문이 스르르 닫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 경우 ‘스르르’는 빠르다거나 느리다고 할 수 없는, 다만 염장 지르는 속도의 의태어다. “아, 억울해!” 정시에 출발한 열차에 대고 맥락 없는 탄식이 허연 입김에 섞여 마스크 밖으로 새어 나왔다.‘억울함’이 2018년 벽두를 북극발 한파처럼 뒤덮고 있다. 비정규직 정규직화에서부터 가상통화 규제, 평창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구성에 이르기까지, 억울함으로 충만한 감정은 고공비행하던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마저 하강기류로 빨아들일 태세다. 직접당사자만의 감정에 그치지 않는다. 단일팀 구성으로 성적이나 출전 기회에 변수가 생긴 남쪽 선수는 최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