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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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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향 엘리트들의 강박적 망언 ‘전향’이라는 말이 쓰이기 시작한 지는 채 100년도 되지 않았다. 그 기원은 1922년 일본공산당 창립에 참여했던 야마카와 히토시가 그해 잡지 에 발표한 ‘무산계급운동의 방향전환’이라는 논문이다. 이후 ‘방향전환’은 ‘전향’이라는 축약어로 널리 쓰였다. ‘변절’의 뉘앙스는 없었다. 오히려 운동의 ‘참된 방향전환’이라는 맥락에서, 능동적 주체가 변증법적 전화 원리에 적극적으로 적응해가는 ‘자기 지양’의 의미가 강했다. 전향이 부정적 의미를 띠기 시작한 건 1930년대 들어서다. 사상경찰은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이 개념을 급진파 학생들의 생각을 순치하는 도구로 활용했다. 관련 기술을 고안해 책자를 발행하고, 체포·구금된 학생들에게 써먹었다. 전향은 ‘자기 지양’에서 ‘투항’으로 바뀌어갔다. 그러나 살이..
외설스런 블랙리스트, 비장한 성희롱 7월에 써놓은 글인데, 이제야 포스팅을 한다. 심리적으로 무척 불안한 상태(지금도 마찬가지지만)에서 쓴 글이어서, 엎어진 쓰레기통 같다. 고쳐보려고도 했지만 의욕이 생기지 않았고, 버리려고도 해봤지만 이 또한 내 흔적인 것을…. 다음엔 잘 쓰면 될 거 아닌가, 라고 자위하며…. 상업 언론의 호들갑은 이따금 코미디 소재가 되기도 하지만, 요즘 한국 언론의 데시벨이 높은 것을 언론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개가 사람을 물면 뉴스가 안 되어도 사람이 개를 물면 뉴스가 된다’는 저널리즘의 경구를 떠올릴 것도 없다. 세상이 코미디라면 그 세상을 재현하는 언론도 구조적으로 코미디 장르를 벗어날 수 없다. 지금 한국 사회는 ‘추문’이라는 이름의 꽃밭에 한꺼번에 꽃이 피고 있는 형국이다. 현 정권 구성 세력을 비롯..
국회폭력 3제, 그리고 ‘사실’의 재발견 사실의 선택적 재구성이 왜곡을 낳는 방식 여기 두 장면이 있다. 한나라당 차명진 의원이 민주당 당직자들에게 목이 졸리고 팔이 부러진다. 민주당 서갑원 원내수석부대표는 조원진 한나라당 의원에게 떠밀려 허리를 다친다. 두 사건 모두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서 벌어졌다. 한나라당이 쟁점법안 강행처리를 위해 국회 본회의장 앞을 점거하고 있고, 이를 막기 위해 민주당이 들이닥쳐 벌어진 일이다. 당신은 기자다. 두 사건을 나란히 보여주겠는가. 누가 누구를 폭행해 어떻게 다쳤고, 다른 누가 누구를 폭행해 어떻게 다쳤다…. 그것으로 족한가. 아니다. 이 사건은 별개의 사건도, 단순 폭행사건도 아니다. 두 사건은 하나의 사건이며, 정치적 사건이다. 개별적 가해와 피해보다 선행하는 건 집단 몸싸움이며, 이보다 선행하는 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