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1) 썸네일형 리스트형 형용사가 된 저널리스트, 손석희 손석희는 손석희인가 4 ‘손석희’와 ‘나’는 뜻하지 않게 ‘우리’가 되었다. 물론 대등한 관계는 아니다. 손석희는 불변의 상수인 반면 ‘나’는 다른 누구로 대체되어도 무방한 변수다. 그렇다고 나는 썩 범용적이지도 않다. 나가 몇이든 그 쓰임은 손석희와 견줘짐으로써 손석희를 더욱 손석희답게 하는 데 국한된다. 수많은 나는 ‘손석희의 나들’이다. 적어도 우리를 우리라고 불러주는 이들에겐 그렇다.손석희와 나가 우리가 되기 위해 반드시 같은 진영에 속할 필요도 없다. 영미 저널리즘을 사숙(私塾)한 한국 저널리즘은 중립을 표방하는 데 있어 보수와 진보가 대동소이하다. 중립의 포지션으로 ‘사실’의 기치를 세우지만, 정작 펄럭이는 건 ‘이미지’다. 손석희는 그 점에서 탁월한 거고, 손석희와 그밖의 저널리스트들의 차이..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