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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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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판 '벌거벗은 임금님', 장자연 리스트 '○○일보 ○사장'을 돌파하는 김대중 고문의 전술 얼마 전 피맛골 어느 술집에서 인권변호사인 정정훈 변호사와 저녁도 거른 채 파전 한 장 앞에 놓고 소주를 마셨다. 몇 번 소줏잔을 부딪치고 나자 대화 주제가 장자연 리스트의 ‘○○일보 ○ 사장’으로 넘어갔다. 는 이종걸 민주당 의원의 발언 부분에 대해서는 ‘○○일보 ○ 사장’으로 보도했고, 조선일보사가 이종걸 의원에게 공문을 보낸 행위 등에 대해서는 ‘조선일보사’ 이름을 적시했었다. 앞서 경기 서남부 연쇄살인 피의자의 이름은 ‘강○○’이란 표기를 끝까지 지켰다. (▷유영철 사건 비사로 돌아본 ‘얼굴공개’) 정 변호사는 미디어스의 ‘일관성’을 높이 샀으나 나는 고민이 깊었다. 강○○ 보도 때는 ‘잘난 체한다’고 욕을 먹었는데 이번엔 ‘비겁하다’고 욕을 먹고..
국회폭력 3제, 그리고 ‘사실’의 재발견 사실의 선택적 재구성이 왜곡을 낳는 방식 여기 두 장면이 있다. 한나라당 차명진 의원이 민주당 당직자들에게 목이 졸리고 팔이 부러진다. 민주당 서갑원 원내수석부대표는 조원진 한나라당 의원에게 떠밀려 허리를 다친다. 두 사건 모두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서 벌어졌다. 한나라당이 쟁점법안 강행처리를 위해 국회 본회의장 앞을 점거하고 있고, 이를 막기 위해 민주당이 들이닥쳐 벌어진 일이다. 당신은 기자다. 두 사건을 나란히 보여주겠는가. 누가 누구를 폭행해 어떻게 다쳤고, 다른 누가 누구를 폭행해 어떻게 다쳤다…. 그것으로 족한가. 아니다. 이 사건은 별개의 사건도, 단순 폭행사건도 아니다. 두 사건은 하나의 사건이며, 정치적 사건이다. 개별적 가해와 피해보다 선행하는 건 집단 몸싸움이며, 이보다 선행하는 건 ..
미담 기사를 의심하라 조선일보의 관점 뒤집기, 무지하거나 뻔뻔하거나… 언론의 관점이 항상 일관하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하나의 언론이 특정한 사안은 물론 보편적 가치에 대해서도 관점을 뒤집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물론 관점의 변경 자체가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관점이 잘못됐으면 바로잡는 게 마땅하다. 그러나 심각한 건, 언론이 무지하거나 아니면 뻔뻔한 탓에 관점이 오락가락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10월11일치 스포츠 면에는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삼성-롯데 2차전에서 일부 롯데팬들이 삼성 투수 눈을 향해 레이저 포인터를 쏘며 투구를 방해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그러나 관중들을 나무라는 것이 아니었다. ‘대다수 롯데 팬들은 레이저 발사 용의자를 향해 “집에 가”를 외치며 성숙한 관전 문화를 보였다.’ 이보다 몇..
막돼먹은 인촌씨, 못되먹은 조선일보 ‘유 장관 막말’, 피해자에게 얼마나 더 수치심 주려고? 미디어스 안영춘 기자 jona01@mediaus.co.kr 강간죄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부녀자’를 간음(姦淫)한 죄’다(형법 제 297조). 그래서 법률적으로 남성은 강간당하지 않는다. 아니 강간당할 수 없게 되어 있다. 당연히 ‘강간(强姦)하다’에 내장된 1인칭은 남성이다. 하지만, ‘강간’이라는 표현이 주는 수치심은 정작 여성(피해자)을 겨냥하고 있다. 이 낱말은 글자로만 봐도 무게중심이 폭력(强)보다는 간음(姦)에 기우뚱하게 쏠려 있다. 간음(부부가 아닌 이들의 성관계)은 남녀가 함께 맺는 것인데도, 여성만이 음란의 일탈 기호(姦-여자 세 명)로 표상되고 있다. 그리하여 강간은 여성의 음란을 남성이 강제한 것이 된다. 강간죄도, 죄는 남성..
최진실 죽음의 정치적 재활용법 [미디어 바로보기] 한국방송대학보 제1513호(2008-10-13) 이 직전 글에서 나는 “언론이 연예인 추문을 들추더라도 사적 부분만 낭자할 뿐, 정작 추문을 둘러싼 정치경제학적 배후, 권력구조를 건드리지는 않는다”고 썼다. 그 뒤 최진실 씨가 자살했다. 그리고, 난 내 발언을 수정(정확하게는 보정)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언론은 연예인에 관해 특정한 목적과 의도에 따라 정치경제학적 배후와 구조를 ‘연출’하기도 한다”고. 어쨌든 최진실 씨의 죽음은 지금 한국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정치적’ 이슈다. 상업성으로 무장한 ‘조문 저널리즘’이 한바탕 휩쓸고 간 뒤, ‘사이버 모욕’을 둘러싼 정치적 조문 저널리즘이 그 뒤를 잇고 있다. 정부여당이 이른바 ‘최진실법’을 통과시키겠다고 발표하면서부터다. 이 법의 핵..
조선일보 향한 ‘짧은 칭찬, 긴 뒤끝’ 성숙한 관중문화는 보면서 성숙한 집회문화는 왜 못보나? 미디어스 안영춘 기자 jona01@mediaus.co.kr 11일(토) 오후 사무실에서 혼자 사발면을 먹으며, 습관처럼 신문을 펼쳤습니다. 간식 먹을 때와 화장실 가서 근심을 풀 때가 평소 보기 힘든 신문 안쪽 면까지 살필 수 있는 기회입니다. 그것도 당일치 신문 말고 며칠 지난 신문이 제격이죠. 이날은 하루 지난 10일치 스포츠 면을 봤습니다.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삼성-롯데 2차전 소식이 지면을 도배하고 있었습니다. 라면 면발을 건져 먹으며 신문을 꼼꼼히 읽어가다 그릇을 들어 국물을 마실 즈음이었습니다. 지면 한구석에서 학창시절 썼던 시내버스 회수권만한 크기의 작은 기사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관중이 투수에 ‘레이저’ 쏴 투구 방해’. 부산 사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