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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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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리더의 죽음 ‘리더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문장을 써놓고 보니, 패전한 사무라이 우두머리가 맞았을 법한 최후의 순간이 일본 막부 시대를 배경으로 연상된다. 그 정조는 단연 비장함이었을 것이다. ‘비장’이라는 낱말에서 비(悲)와 장(壯)은 대등하지만, 죽음마저 자신의 결단임을 내세우는 저 미학적 행위에서만큼은 장엄함이 슬픔을 압도한다. 얼마 전 직장 내 괴롭힘에 시달리던 한 젊은이가 세상을 등졌다. 그 또한 리더였다. 이 글 첫 문장을 그대로 옮겨도 사실관계에 어긋남은 없다. 하지만 그의 죽음 어름엔 장엄함의 옅은 그림자 한 조각 어른거리지 않았다. ‘리더’는 네이버가 그에게 부여한 직책이었다. 한국 아이티(IT) 업계를 선도한다는 기업답게 직함 하나도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그에 관한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내..
드라마 문법으로 본 카이스트 사태 어느 날 어린 딸아이가 TV를 보다 말고 툭 내뱉는 말이 걸작이었다. “드라마에서 가장 형편없는 죽음은 교통사고로 죽는 것이다. 아무 이유도 없이 죽이고 끝낸다.” 그러나 정확히 말해 이유 없는 죽음은 아니다. 드라마를 끝맺어야 하는 제작자가 개연성에 기대어 고민을 간단히 해결하려는, 이유 있는 죽음이다. 드라마뿐이겠는가. 현실 세계에서도 다른 누군가에 의한, 누군가를 위한 개연적 죽음은 숱하다. 최근 카이스트 학생들이 잇달아 자살을 하고, 교수 한 사람도 스스로 목숨을 끊자 언론들이 대서특필하고 나섰다. 언론은 흔히 정치적으로나 상업적으로 죽음에 등급을 매긴다. 보도할 것인가 말 것인가, 어느 정도 크기로 보도할 것인가…. 입시 스트레스나 좌절로 목숨을 끊는 고등학생이 한 해 줄잡아 100명이 넘지만,..
웃어야 산다 이 글은 2010년 송년호 ‘시론’으로 쓴 글입니다. 2010년을 보내고 2011년을 맞는 것과 관련해 글을, 그것도 ‘시론’이라는 문패로 써달라는 요청은 난감했다. 주례사의 심정도 이와 비슷하리라! 시인 김수영은 “누이야 풍자가 아니면 해탈이다”라고 읊었다(). 1961년 5·16 쿠데타가 발발한 지 석 달 뒤였다. 누구보다 4·19 혁명을 예찬했던 김수영에게 5·16은 믿기 어려운 참극이었음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대략 10년 뒤, 시인 김지하는 이 시구를 빗대어 “누이야 풍자냐 자살이냐”라고 썼다. 박정희의 폭압 정치가 극을 향해 내달릴 때였다. 두 시인 모두에게 ‘풍자’는 현실의 고통을 승화하는 기제였다. 풍자는 ‘비유’라는 표현 양식을 통해 ‘웃음’이라는 사회적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비유하는..
상복보다 더 시키먼 조중동K의 속내여 ※ 이 글은 제763호(2009.06.05)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대형 특별기획 표지이야기에 실린 글입니다. 저는 그동안 외부에 발표한 글에 대해서는 해당 매체 인터넷이 기사를 공개하고 나면 와 제 블로그에서 ‘발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해왔지만, 이번 글은 ‘발행’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6월4일 오후 에 톱기사로 걸려서, 같은 글 하나를 놓고 세 곳에서 ‘노출’하는 것이 민망해졌기 때문입니다. [표지이야기-분노의 기억] 족벌언론과 관제방송 KBS의 ’애도 저널리즘’…타살 공범관계 뒤덮으려 ‘탈정치’ 덧칠하다 당신은 슬프던가? 제호 아래, 5월의 폭우를 맨몸으로 맞고 선 봉하마을 추모객들의 먹물 같은 표정 사진은 당신 심장 안으로 삼투압되던가? 호외판 1면 가득 실린 망자의 얼굴 사진을 보며, 30m..
노무현을 기억하려는 자와 지우려는 자 [미디어스 데스크] 자살과 애도의 정치·사회학적 잡설 안영춘 편집장 jona01@mediaus.co.kr 고전주의 미학이라면 이럴 땐 비극적이되 장엄하고 숭고한 이미지라야 한다. 지금 한국의 대중매체들이 재현해내는 애도의 퍼포먼스가 꼭 그렇다. 톡톡 튀는 목소리로 오락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여성 아나운서는 라디오 뉴스에서 느리고 낮은 목소리로 기사를 읽어 내려갔다. 신문 호외 편집도 더없이 무겁고 장중했다. 사람들의 보편적 심리상태도 그랬을 터였다. 그런데 지난 토요일 오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 소식을 처음 듣는 순간, 숙취로 절여진 내 전두엽을 치고 간 건 드라마 소품처럼 사소한 기억이었다. 경악하고 애달파하는 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부조리해보였다. 내가 기억해낸 건 비교적 최근 누군가로부터 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