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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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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적 특혜’라는 외설 김현아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 사장 후보자가 자기 소유 부동산 네 채를 두고 “시대적 특혜”라고 했다기에, 그와 나의 시간대가 얼마나 겹칠까 문득 궁금해졌다. 교집합이 꽤나 컸다. 공범 의식이 주입된 탓인지, 쑥덕공론 한번 못 해보고 그의 사퇴 소식을 들어야 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자연의 일부인 땅을 사랑할 뿐 투기와는 전혀 상관없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 박은경 전 환경부 장관 후보자가 신파극 속 ‘행인 1’이었다면, 무려 시대를 호명한 김 후보자는 대하드라마의 히로인이었다. 비슷한 ‘시대적 특혜’를 누렸을 여권 정치인들을 비꼬았던 것이 ‘내로남불’의 덫에 걸려 드라마는 허무하게 막을 내렸지만, 시대를 볼모 삼은 그의 대사는 분명 잔망스러울 만치 영리했다. 김 후보자는 퇴장했으나, 그의 대사..
기억 앞에서 겸손하다는 것 ‘기억 앞에서의 겸손함’이 탁월한 문학적 수사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듯하다. 기억의 불확실성과 자의성에 대한 진지한 자기성찰 없이 저런 표현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그런 능력은 영리함과는 사뭇 다른 것이다. 영리함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뇌과학자들이 기억의 기제를 설명한 것들을 보더라도 저토록 사려 깊은 표현을 만날 수는 없다. 가령, 2000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에릭 캔들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기억은 그 핵심에서 보면 심장 박동과 다르지 않은 생물학적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더없이 명쾌하지만, 겸손이나 성찰 대신 상실감을 안긴다. 로맨틱한 기억도 쓰라린 기억도 저 설명 앞에서는 질적 차이를 상실한다. 그러나 오늘날 뇌과학자들의 이론을 참조하지 않고 기억의 원리를 설명하는 건 불가능하다. ..
‘자본주의 4.0’의 복화술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드디어 끝났다”라고 쓰려는 순간, 다시 일이 터졌다. 한쪽이 충격을 받을 때 다른 한쪽은 쾌재를 부르는 제로섬의 순환구조인 걸 보면, 무상급식 문제는 사실상 진영의 정치적 이해에 종속된 무늬만 복지 의제라고 하겠다. 주민투표가 끝나자마자 검찰이 피의사실을 흘리고 나선 것 자체가 가장 적극적인 정치행위였다. 진실의 문제를 떠나, 이런 식의 ‘정치 과잉’은 곧 ‘담론 부재’와 이면관계에 있다. 무상급식은 여태 상징의 깃발만 나부끼는 불모의 의제였다. 무상급식을 하면 나라가 거덜날 것처럼 떠들어대는 목소리에서는 이성의 풀싹조차 찾아볼 수 없지만, 그 반대 진영이라고 해서 무상급식 ‘너머’를 제대로 통찰했는지는 의문이다. 설령 전략적 선택이었다 해도, 선별급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