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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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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누구의 ‘자유’인가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사는 ‘자유’의 폭포 세례와도 같았다. 양과 질 모두 그랬다. 16분 남짓 동안 35번 입에 올렸고, 대한민국뿐 아니라 인류 전체를 구원할 독보적 가치로 추어올렸다. 그러나 그의 취임사는 일본 고유의 단시(短詩)인 ‘하이쿠’처럼 언어 밖으로 탈주하려는 텅 빈 기표 같기도 했다. 그는 ‘국민 여러분’과 ‘세계 시민 여러분’에게 자유의 가치를 제대로, 정확하게 인식해 재발견해야 한다고 주문할 뿐, 왜 자유가 양극화와 사회 갈등을 치유하고 도약과 빠른 성장을 가능케 하는 과학·기술·혁신과 필연적 관계인지 따위에는 지극히 말을 삼갔다. 친절한 설명이 있어도 채워 넣기 어려운 그 광막한 행간은 결국 그가 5번 호명한 ‘여러분’ 몫으로 할당됐다. 하지만 각자 흩어져 따로 노는 저 파편적 개념들 ..
살찐 고양이는 나누는 법을 배워야 한다 ‘살찐 고양이 법’은 고양이와 무관하다. 애묘인도 이해관계자가 아니다. 2016년 6월 심상정 의원(당시 정의당 상임대표)이 민간기업과 공공기관의 최고임금을 최저임금의 각각 30배와 10배로 제한하는 내용의 살찐 고양이 법(정식 명칭은 최고임금법)을 발의했다. 살찐 고양이는 서구 풍자만화에서 탐욕스러운 자본가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심 의원의 법안은 사실 벤치마킹이다. 2013년 스위스에서는 기업 내 최고임금을 최저임금의 12배로 제한하는 법안이 국민투표에 부쳐졌다. 결과는 부결. 하지만 경영진이 퇴직 때 거액의 보너스를 받지 못하게 하는 법안이 함께 발의돼 가결됐다. 2015년 유럽연합은 은행 임원의 보너스가 급여의 2배를 넘지 못하게 하는 규정을 만들었다. 앞서 2012년 프랑스는 공기업 최고임금이 최..
극우 저널리즘과 광신적 테러리스트의 만남 모든 사안에서 언제나 논리가 명쾌했던 박노자 오슬로국립대 교수도 이번에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전화기 너머로 탄식이 새어나왔다. 평소 노르웨이 사회가 외부 약탈을 통해 내부의 사민주의를 유지하고 있다며 비판적 긴장을 유지해오던 그였지만, 이번 사건만큼은 발생 개연성조차 내다보지 못한 듯했다. 그는 끝내 말을 아꼈다. 물론 브레이비크 테러 사건이 터지기 전에도 유럽에서 극우주의적 징후는 뚜렷했다. 올 1월호는 유럽 각국의 극우파들이 최근 어떻게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지를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지난 2년간 유럽 극우 정당들은 선거에서 득표율 10%를 넘어섰고, 몇몇 국가에서는 15%를 돌파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은 광신적이기는커녕 기회주의적 태도를 보이며 제도권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그렇다보니 이번 테..
군복 애착증을 위한 변명 그들의 군복 입은 모습에서는 백전노병의 이미지가 좀체 떠오르지 않는다. 자신의 존재감을 알려야 하는 자리에서는 어김없이 군복을 입었을 테지만, 그들의 입성은 그들이 기대하는 자신의 정체성을 뜻대로 대변하지 못한다. 그들은 ‘애국자’의 기호를 기획했다. 그러나 그들의 군복 애호는 차라리 코스프레(만화나 게임의 주인공으로 분장하는 취미)나 복장도착(이성의 옷을 입는 데서 성적 만족이나 흥분을 얻는 성향) 같은 특이한 취미와 성향으로 읽히고 있다. 군복 주름에 날을 세워 입고, 그들은 미성숙한 어르신의 극치를 보여준다. 군인의 삼엄한 이미지는 실종되고 날건달의 이미지만 남는다. 하지만 ‘예비군복만 입혀놓으면 개가 된다’는 말은 이 경우엔 온전히 들어맞지 않는다. 의미로는 되레 정반대다. 대개 예비군복은 ‘일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