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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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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같은 일상, 어디라도 이태원이다 지난달 30일 아침, 버스를 갈아타려고 서울 연세대 앞 정류장에서 내렸다. 여느 일요일 출근길이면 차 한대 볼 수 없던 연세로를 버스들이 태연히 오가고 있었다. 서대문구가 얼마 전에 ‘주말 차 없는 거리’를 폐지했고, 평일엔 버스만 지나갈 수 있는 ‘대중교통전용지구’마저 해제하려고 한다는 기사를 읽기는 했었다. 한적함이 좋아 500m를 부러 걸어서 지나곤 하던 거리가 차량과 경적 소리만 빼곡했던 오래전으로 되돌아가 있는 풍경이 떠올랐다. 간밤 이태원 참사에 개기일식처럼 검게 먹어버린 심장 한가운데로 저릿한 파동이 훑고 지나가는 게 느껴졌다. 이태원 참사와 그보다 한없이 사소해 보이는 기초지방자치단체의 퇴행 사이에도 별자리처럼 이어지는 지점이 있다. 무엇보다, 그날 이태원로의 차량 통행을 막았더라면 골목길..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한종선이 말했다. “나는 부랑자가 아니었습니다.” 술병이 비워지는 동안에도 몇번이고 되풀이했다. 얼마 뒤 토론회에 참석해서도 종선의 동료들한테서 같은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납치, 감금, 폭행, 강제노동, 타살의 생지옥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 그 말로 증언을 시작하거나, 적어도 한번은 경유했으며, 더러는 끝을 맺었다. 그들은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다. 솔직히 당혹스러웠다. 형제복지원은 박정희 정권부터 전두환 정권에 걸쳐 운영된 사상 최악의 집단 강제 수용시설이다. 보편적 인권의 관점에서 ‘부랑자냐 아니냐’ 하는 이분법은 스스로 피해자 내부를 차별하고 위계화한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려웠다. 그러고도 나는 종선의 증언이 실린 라는 책에 서문을 썼다. 탈고한 뒤에도 도무지 개운치가 않았다. 책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