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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글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지난 7일 부산 형제복지원 피해자인 최승우(왼쪽)씨가 여·야의 형제복지원 진상 규명을 위한 과거사법 20대 국회 내 처리에 합의 소식에 농성을 풀며 기뻐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한종선이 말했다. “나는 부랑자가 아니었습니다.” 술병이 비워지는 동안에도 몇번이고 되풀이했다. 얼마 뒤 토론회에 참석해서도 종선의 동료들한테서 같은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납치, 감금, 폭행, 강제노동, 타살의 생지옥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 그 말로 증언을 시작하거나, 적어도 한번은 경유했으며, 더러는 끝을 맺었다. 그들은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다.

솔직히 당혹스러웠다. 형제복지원은 박정희 정권부터 전두환 정권에 걸쳐 운영된 사상 최악의 집단 강제 수용시설이다. 보편적 인권의 관점에서 ‘부랑자냐 아니냐’ 하는 이분법은 스스로 피해자 내부를 차별하고 위계화한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려웠다. 그러고도 나는 종선의 증언이 실린 <살아남은 아이>라는 책에 서문을 썼다. 탈고한 뒤에도 도무지 개운치가 않았다.

책이 나오고 8년이 다 돼 가던 지난 5월, 형제복지원 진상조사 기구를 설치할 수 있는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국회를 움직이기 위해 피해자들은 숱하게 농성을 하고 단식도 했다. 꿈쩍도 않던 20대 국회는 임기 종료 직전에야 다른 법안들과 함께 설거지하듯 일사천리로 법안을 처리했다. 그즈음 형제복지원을 소재로 다룬 장편소설 <은희>(박유리 지음)가 발간됐다. 작가도 농성하고 단식하듯 글을 쓰다 보니 때가 맞아떨어진 게 아닐까 싶었다.

<은희>에서는 형제복지원을 매개로 수십년에 걸쳐 여러 인물이 교차하는데, 납작한 캐릭터는 하나도 없다. 실존인물인 형제복지원 원장 박인근을 형상한 방인곤조차 악인의 남루한 이면을 품고 있다. 개중 미연은 가장 다층적이면서 양극적인 운명으로 그려진 인물이다. 그는 탈출에 실패한 뒤 무자비한 폭행을 당하고 사경에 놓인 은희의 마지막 숨을 ‘인위적’으로 거둔다. 죽어야 벗어날 수 있는 생지옥에서 그렇게 친구의 천국행을 배웅한다.

미연은 자신이 살인자임을 부정하지 않고, 고통스럽게 죄의식을 감당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같은 상황이 다시 도래하더라도 같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음을 안다. 그의 행위는 실정법은 물론 도덕 감정의 너머에서 이뤄졌고, 긍정과 부정의 이분법을 뛰어넘는 서사의 일관성으로 수렴된다. 책을 덮고 나서, 종선과 동료들에 대한 오랜 의문의 안개가 걷히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부랑자가 아니었다”를 자기부정으로 해석한 건 내가 ‘피해자다움’과 ‘정치적 올바름’의 도그마에 갇혀 있었던 방증은 아닐까. 그들의 언어를 온전히 이해하려면 그들이 겪은 고통으로, 그들이 붙들고 있는 기억으로 건너가야 한다. 물론 실존의 넘나듦은 애초 불가능하지만, 그 불가능성을 인정해야 비로소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향한 출발선에 설 수 있을 터이다.

얼마 전 소설가 정찬의 수필집 <슬픔의 힘을 믿는다>에 나오는 일화에서 작지만 귀한 실마리를 얻었다. 정찬은 어느 모임에서 처음 만난 시인 기형도로부터 그의 소설 <기억의 강>과 관련해 이런 취지의 질문을 받는다. ‘기억의 끔찍함을 어떻게 견디느냐?’ 나는 글의 맥락과 별 상관 없이, 종선과 동료들이 지금도 견디고 있을 형제복지원에 대한 기억의 끔찍함을 떠올렸다.

형제복지원 설립과 운영의 취지는 ‘부랑자 교화’였다. 정부도 그 명분으로 큰돈을 댔다. 밤늦도록 돌아오지 않는 엄마를 마중 나가서 까무룩 잠이 들었다가 강제로 수용소에 끌려가 갇힌 아이가 정형행동처럼 반복해서 던질 수밖에 없던 질문은 무엇이었을까. ‘부랑자도 아닌데 왜 끌려왔을까’가 아닐까. 그 의문은 지금도 기억으로 끝없이 소환되고 있는 건 아닐까.

‘위안부’ 피해 생존자 이용수 할머니는 “내가 왜 성노예냐. 그 더러운 성노예 소리를 왜 하느냐”고 했다. 그 말을 공깃돌 삼아 억측과 의혹을 ‘발명’하는 일부 언론과 정치권의 행태야 말해 무엇할까. 나는 할머니의 사정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이가 활동가나 연구자 가운데도 없다는 걸 인정하고, 할머니 스스로도 설명하지 못할 가능성까지 열어두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할머니의 말은 부정의 형식을 띠지만, 할머니의 기억 속에서는 가지런한 일관성을 띨 가능성까지도. 그렇다면 ‘기억의 강’ 너머가 아무리 아득해도 건너기를 포기할 수는 없다.

※ <한겨레> 6월19일 ‘아침 햇발’에 실린 글입니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49985.html

 

[아침 햇발]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 안영춘

한종선이 말했다. “나는 부랑자가 아니었습니다.” 술병이 비워지는 동안에도 몇번이고 되풀이했다. 얼마 뒤 토론회에 참석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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