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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글

신전 위의 의사들

지난 1일 대한의사협회(의협) 산하 의료정책연구소가 정부의 공공의대 정책을 비판한다며 페이스북에 올린 카드뉴스.

‘당신과 당신 가족 눈에 피눈물이 나게 해주겠다.’ 전자우편은 이렇게 시작했고, 이 한 문장으로 끝났다. 발신인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날 쏟아져 들어온 성난 전자우편 수백통의 발신인들과 같은 부류인 것만큼은 모를 수가 없었다. 그날치 신문에 의약분업에 반발해 집단휴진 중인 의사들의 행태를 비판하는 글을 쓰고 난 뒤였다. 한동안 잊을 수 없었던 그날의 기억이, 꼬박 20년이 지난 요즘 어제 일처럼 생생한 떨림으로 다시 떠오른다.

 

그사이 한국 사회는 부침을 겪고 더러 뒷걸음질 치기도 했지만, 외신도 ‘촛불혁명’이라고 상찬한 대통령 탄핵까지 일궈낼 정도였던 그 시간을 진보라 부르지 못할 바는 없다고 본다. 의사들의 시간만큼은 예외다. 사람을 살리는 역능이 사람을 죽음 앞에서 방치하는 역능으로 뒤집히는 끔찍한 현실만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미동조차 없다. 다만 의약분업 하면 세상이 두쪽 날 거라던 예언이 ‘돌팔이’ 지역의사들에게 생사를 내맡기는 세상이 올 거라는 묵시록으로 변주됐을 뿐이다.

 

의사들의 집단행동을 끌어낸 저 주술에서 현실 정합성을 찾기란 불가능하다. 하물며 이성적 논리가 초·중·고 성적의 존엄과 경합하려 드는 것조차 불경하다 믿는 집단신앙 앞에서 논리적 설득을 시도하는 것만큼 무망한 노릇도 없다. 그럼에도 20년의 시차를 버텨낸 저들 나름의 일관성에서 새로운 진실 하나가 확인된 것은 적잖은 소득이다. 의사집단의 정체성은 무엇보다 집단적으로 의식의 성장이 멈춰버린 정체 상태 그 자체라는 점이다.

 

연륜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이 처신할 바를 파악하는 태도가 얼마나 체화됐느냐로 따질 수 있다. 세차례나 의사 시험을 거부한 제자들을 꾸짖고 타이르지는 못할망정 추가 시험 기회를 보장하지 않으면 집단행동을 불사하겠노라 으르던 의대 교수들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의사집단이 어떻게 처신할지를 파악하는 기초적인 판단능력도 갖추지 못했다. 저들도 초·중·고 시절에 의식의 성장이 멈춰버린 정체 상태다. 연륜이 없으면 스승이 아니다. 그저 가르치는 기술자다.

 

스승이 없으니 제자도 없다. 의대생도, 전공의도, 개원의나 봉직의도, 마침내 교수까지도 어쩌면 그토록 하나같은지 신비해 보이지만, 그것은 불가사의가 아니다.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 연륜을 쌓고 아래로 재생산할 수 있는 시스템이 부재한 탓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그때그때 역할만 갈아타는 폐쇄된 생애주기가 컨베이어처럼 돌아갈 뿐이다. 직업적 소명을 정면으로 배신하며 타자에 대한 생살여탈권을 휘두르는 탈윤리는, 그래서 구조적 문제이자 사회과학의 연구 대상이다.

 

근래 의사집단의 행태가 ‘비뚤어진’ 엘리트 의식 탓이라는 진단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반듯한’ 엘리트 의식 탓이라고 하는 게 진실에 가깝다고 본다. 의사들이야말로 한국 사회 엘리트 의식의 독자성, 나아가 시대적 욕망과 게임의 법칙을 가장 투명하게 전시하고 있다. 의사가 되는 길에 공식적인 음서제는 없다. 드라마 <스카이 캐슬>이 보여주는 바대로, 의대 교수의 자식조차 가족 전체가 죽을힘을 다해야만 의대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공정성’이다.

 

대중은 의대 입학생들의 계층적·지역적 배경이 극단적으로 편중되는 현상을 공정성이 결여된 것으로 보지 않는다. 초·중·고 성적이 공정성의 잣대로 작동하기만 하면 평등감에 심취한 평화로운 심리 상태가 된다. 반면 지난해 어느 유력가 집안의 자녀가 의학전문대학원 입학을 위해 부모 찬스로 ‘스펙 품앗이’를 했다는 의혹이 일자 대중은 크게 공분했다. 둘은 배중률의 관계다. 하나는 전적으로 공정하고 다른 하나는 전적으로 불공정하다.

 

전공의들이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부동산정책에 반발하는 이들에게 연대를 표명함으로써 의사집단이 공정성 신화에서 차지하는 위상도 드러났다. 저들은 신전의 주인이며, 연대의식은 욕망의 수직구조 꼭대기에서 아래로 흐른다. 저들이 비록 비정하고 폭력적일지라도, 믿음이 부족한 이에게 신화는 본디 잔혹물이다. 20년 전 내가 받은 전자우편처럼. 결론은 이렇다. 우리가 저들에게 욕망을 계속 투사하는 한, 의대생은 물론 의대 교수에게도 유아기적 신화에서 벗어날 ‘현타’(현실 자각 타임)는 오지 않을 것이다.

※ <한겨레> ‘아침 햇발’에 실린 글입니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62257.html

 

[아침 햇발] 신전 위의 의사들 / 안영춘

안영춘 논설위원 ‘당신과 당신 가족 눈에 피눈물이 나게 해주겠다.’ 전자우편은 이렇게 시작했고, 이 한 문장으로 끝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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