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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글

‘나는 가수다’, 마케팅과 정치학

꿈의 에너지’는 꿈이되 악몽이다. 원자력은 맘대로 켤 수 있으나 맘대로 끌 수는 없는 불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는 머리로만 알고 있던 이 번연한 사실을 눈과 가슴으로 깨단케 한다. 이처럼 어떤 선택은 선택 이후 다른 선택의 여지를 봉쇄한다. 심지어 통제 불능 상태를 미필적으로 예고하기도 한다. 그런 점만 놓고 본다면 문화방송의 <나는 가수다> 사태는, 재미와 감동의 크기와는 별개로, 방송의 원전 사태라고 부를 만하다.

내로라하는 실력파 가수들이 한 데 모이는 것도 예사롭지 않은데, 반드시 한 명씩은 탈락해야 하는 서바이벌 게임을 이어가도록 한 기획은 최고의 흥행 요소임에 틀림없다. 눈요깃거리로 전락한 한국 가요계에 노래 실력이라는 정의를 되살리겠다는 기획의 변을 믿든 말든, 제작진의 최우선 목표는 흥행이었다. 가수 어깨 뒤로 난무하는 경마 중계식 순위 자막은 시청자들에게 노래에 몰입하는 대신 손에 땀을 쥐라고 요구한다.

‘꿈의 시청률’을 향한 제작진의 열망은 출연자가 녹화를 거부하는 방송사고로 이어졌다. 제작진은 마침내 자신들의 긴급회의 장면까지 콘텐츠로 담아 방송한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제작진이 직접 화면에 출연하는 고도의 연출이 이미 대세가 되었다지만, 이 경우는 연출이 아니라 연출 불능 상태다. 그러나 이런 낯선 사태만큼 뛰어난 눈요깃거리가 또 얼마나 있겠는가. 제작진은 연출권을 내어놓고 편집권을 행사한다.

물론, 방송은 제작자의 전유물이 아니다. 배타적인 연출권이 출연자나 시청자를 소외시키는 것이 더 큰 문제일 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가수다> 사태는 그런 것과 하등 관련이 없다. 권력관계가 외설적으로 불거졌을 뿐이다. <슈퍼스타K>와 견줘보자. <슈퍼스타K>에서 직업가수 3인은 가수 지망생 수만 명의 생사여탈권을 행사한다. <나는 가수다>에서 직업가수 7인은 평가단 500인의 평가를 보이콧한다. <슈퍼스타K>에서 가수 지망생은 <나는 가수다>에서는 평가단이다. 전자에서 배후권력이었던 제작진은 후자에서는 권력의 지렛대다.

후쿠시마 원전은 천문학적인 인적·물적 피해를 남기고 폐쇄될 테지만, 한국 원전주의자들에겐 일본을 제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나는 가수다>의 연출자는 퇴진했지만, 노이즈 마케팅은 방송계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되어 대박을 거두고 있다. 가족이 없는 비정규 노동자들은 후쿠시마 최후의 전사가 되어 방사능에 장렬하게 피폭되고, 맏형의 탈락만큼은 두고 볼 수 없다던 이들은 막내 가수의 희생번제에 감동의 박수갈채를 보낸다.

이제 통제 불능 상태의 악몽은 추억으로 기억하고, 다시 최고 가수들의 서바이벌 게임을 손에 땀을 쥐고 즐기면 되는 것이다. 생각났다는 듯, 탁월한 가창력에도 문득 감동하며.

※ <한국방송대학보> 1623호(2011년 4월 11일)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