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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글

세종시와 KBS 시청료 인상의 함수관계


헌법재판소가 대한민국을 관습헌법이 지배하는 나라로 둔갑시켜 행정수도 이전을 가로막았던 5년 전이나, 대통령과 그의 국무총리의 ‘의연하고 당당한’ 일방통행으로 행정도시가 백지화 위기에 몰린 오늘이나, 그들이 끝내 집착하는 건 ‘중앙’이라는 단 하나의 상징이다. ‘권력의 공간’으로서 중앙은 지리적으로 곧 ‘서울’이다. 서울이 아닌 곳은 모두 ‘지방’일 뿐이다. 서울대가 한국대로 개명하지 않고도 한국 고등교육 자원을 통째로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된 것도, 서울지역에 소재하지 않은 대학은 ‘지방대’라는 메타명칭으로 묶여 불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들에게 중앙의 공간적 해체는 권력을 내려놓는 것에 견줄 만한 일이다.

세종시를 ‘관제 기업도시’로 만들려는 정부의 행태는 2차 대전 이후에도 식민지를 유지하려고 엄청난 혼란과 비용을 감내했던 서방국가들의 그것과 닮아 있다. (서울을 제외한 한반도 남쪽 전체가 서울에 의해 식민화된 공간이니 이런 비유가 그닥 과장은 아닐 터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기업들에게 전례 없는 파격 특혜를 줘가며 돈은 돈대로 들이고 차별 시비까지 자청하는 이유를 달리 설명할 방법은 없다. ‘중앙-서울-권력’의 삼각동맹을 묶어둘 수만 있다면 어떤 기회비용과 희생도 감수하겠다는 것이다. 이젠 형평성 문제 때문에 다른 지역에도 ‘원형지 개발’ 방식을 적용하겠다고 하니, 토지 덤핑에 의한 전국토의 사유화도 멀지 않은 듯하다.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 발표 직후, 이른바 중앙언론들은 환영일색으로 대서특필하고 나섰다. 그들 역시 삼각동맹의 주요 일원이니 존재론적으로는 당연한 태도일지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세종시 수정안은 온나라를 제로섬 게임의 각축장으로 바꿔놓았다. 새만금과 기업도시, 혁신도시들이 자신들이 점찍어둔 기업들을 세종시에 빼앗길 처지가 되자 죽기살기로 덤비고 있다. 국회 통과도 예단할 수 없는 처지다. 이튿날부터 중앙언론들도 반대 목소리를 비중 있게 다루기 시작했다. 자칫 줄을 잘못 섰다가는 집토끼도 산토끼도 모두 잃을 수 있는데, 신중하지 않을 재간이 있겠는가.

정부는 방송 정책도 제로섬 게임으로 변질시키고 있다. KBS ‘시청료’(그들 표현으로는 ‘수신료’)를 두 배 올리겠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정작 KBS를 위한 것이 아니다. 시청료를 올리는 대신 광고를 못하게 해, 새로 방송시장에 진입하는 종합편성채널에 더 많은 광고를 몰아주겠다는 계산이다. 일부 중앙일간지들의 신장개업을 위해 국민의 호주머니를 터는 꼴이다. 기업에 황홀경의 혜택을 주기 위해 국민 세금을 쏟아 붓는 ‘세종시 셈법’과 너무나 똑같다. 5공 때처럼 시청료 거부운동이 일어날 태세다. 중앙에 맞서, 식민지 백성들의 반란이 시작되려는 것인가.

※ <한국방송대학보> 제1570호(2010-01-18)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