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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글

언론의 덕담은 너무 비싸다

덕담만 있는 새해 보도들, 비판 저널리즘 실종

덕담은 공짜다. 아무리 많이 말하고 들어도 돈을 주고받지는 않는다. 설령 말로 먹고사는 변호사라도 예외는 아니다. 덕담에는 무게도 없다. 솜사탕처럼 가볍기만 하다. 정의롭게 부자 되는 게 불가능한 사회에서 “부자 되세요”라는 덕담이 부정과 비리를 사주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공짜에다 가볍기까지 한 덕담이라지만, 부작용이 없는 건 아니다. 가령 “올해는 시집가야지?” 따위의 덕담은 비혼 여성에게 적잖은 스트레스를 준다. 특히 언론의 새해 덕담은, 현금은 아니지만 돈까지 든다. 바로 기회비용이다.

새해 들면 신문과 방송에는 온갖 덕담이 넘쳐난다. 1년 내내 대북 강경론을 펼쳐온 몇몇 신문들도 신년호 지면에서는 화해와 평화를 기원한다. 덕담에는 무게감이 없는 법이니,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에 굳이 시비 걸 일은 아니다. 하지만 새해가 됐다고 창졸지간 세상이 온통 사랑으로 넘쳐날 수는 없다. 미간을 찌푸리게 할망정 반드시 세상에 알려져야 하는 일은 해를 넘겨 계속되거나, 새해 들어 새로 생겨난다. 새해 신문과 방송에는 그것이 없다.

2009년 12월 31일과 2010년 1월 1일 사이, 국회에서는 한국 사회에 엄청난 부담을 줄 일들이 날치기로 관철됐다. 미래 세대에 두고두고 짐이 될 4대강 개발 관련 예산이 온라인 카페 ‘번개 모임’ 하듯 (말 그대로 전광석화처럼) 처리됐다. 노동자들의 조합 활동을 크게 제약할 노동 관련법은 범죄집단 작당모의처럼 회의장 빗장이 잠긴 채 통과됐다. 10여 년 전 노동자 총파업이 일어나고, 정권이 끝내 백기투항했던 것과 같은 내용의 법안이다. 그런데도 새해 대부분의 신문과 방송에서는 사안의 무게에 값하는 보도를 찾아볼 수 없었다.

물론, 언론 탓만은 아니다. 누군가는 덕담이 차고 넘치는 시기를 이용한다. 이를테면 두바이의 세계 최고층 빌딩 ‘버즈 두바이’가 새해 벽두에 완공된 것은 공기가 공교롭게 맞아떨어졌기 때문일까? 두바이는 지난해 후반 사실상 국가 부도 사태를 맞았다. 묻지마식 부동산 개발이 빚은 결과였다. 버즈 두바이는 무한질주해온 토건의 욕망을 상징한다. 지난해 그 욕망의 비극적 말로를 대서특필했던 언론들이 2010년 1월 1일에는 일제히 버즈 두바이의 높이와 넓이를 경외했다. 두바이 사태를 새삼 환기하는 언론은 없었다.

언론은 이들 지능적인 플레이에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는 숙주일 뿐인가? 그렇지 않다. 언론의 새해 ‘덕담 저널리즘’은 상업주의와 정파성이 동시에 반영된 결과다. 그 덕담으로 광고주로부터 광고도 따내고, 외면하고 싶은 문제에 침묵할 수도 있다. 투전판 용어로 일타쌍피다. 덕담 저널리즘을 접하는 우리는 ‘망각’이라는 거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저널리즘에 공짜는 없다.

※ <한국방송대학보> 1569호(2010-01-11)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