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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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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레슬링으로 본 오늘 한국 5월29일치 ‘왜냐면’에 실린 글이다. 쪽에 꼭 실어달라고 몇 번이고 신신당부를 해서, 겨우 실렸다. 살면서 매체에 글 실어달라고 청탁해보기는 처음이다. 본디 저널적 글은 선도가 생명인데, 시간을 오래 끌어 물이 갔다. 자존심도 상하고 민망하기도 했지만, 어느 분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리했다. 신문에서는 군데군데 서너 문장이 잘렸다. 분량이 넘쳤나 보다. 아프다. 나도 늘 다른 사람 글을 자르면서 필자의 아픔을 이해하려고 해왔는데, 아픔을 느끼는 인간의 몸은 모두 개별적이어서, 그 간극을 넘어설 수 없나 보다. 아래 글은 신문에서 잘린 대목까지 다 담은 원문이다. 얼마 전 지율 스님이 전화를 걸어오셨다. 한숨을 폭 내쉬신다. 그날 에 실린 칼럼(‘아니면 말고’ 선동, 3진아웃 시켜야)을 보시고, 말 ..
부마항쟁을 잊고 박정희를 숭배하다 ※ 이 글은 한국판 1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무관심 속 30주년 기념 심포지엄… 오늘의 한국 사회에 시사점 양자는 모순대당 관계…‘힘의 욕망’ 벗어나야 박정희 극복 가능 부마민주항쟁은 사람 몸의 꼬리뼈와 같다. 퇴화기관이라는 말이다. 지난 10월 16일은 부마항쟁이 일어난 지 꼭 30년이 되는 날이었다. 온갖 상수학적 마케팅이 넘쳐나는 세상이지만, 부마항쟁 30주년에 관한 사회적 환기는 묵상에 가까웠다. 1979년 부마항쟁이 일어나고 열흘 뒤 10·26 사태가 터졌다. 박정희는 부마항쟁을 총칼로 진압하고 일주일도 채 안 돼 자신의 심복 김재규의 총격을 받아 숨졌다. 30년이 지난 지금, 부마항쟁은 흔적만 남은 꼬리뼈처럼 잊혀지고, 박정희는 숭배의 대상으로 되살아나 있다. 그리고 박정희의 부활을 이해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