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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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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부 해체’와 ‘멸공’이 말하지 않은 것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말은 극단적으로 짧았다. ‘설화’를 줄이기 위한 전술의 일환이 아닐까 짐작도 해봤다. 그러나 훨씬 강력한 쓸모는 상대의 말문을 막는 것이었다. 윤 후보는 ‘여성가족부 폐지’ 일곱 글자의 뜻을 묻는 기자들에게 “뭐든지 국가와 사회를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주시길 바란다”고 했다. 엉터리없는 동문서답이 아니다. 더는 묻지도, 답변을 기대하지도 말라는 거다. 그리하여 ‘여성가족부 폐지’는 설명 따위 필요 없는 암기과목의 단답형 정답이 됐다. 문제는 그 정답이 누구에게 제출됐는가다. 빨간펜은 ‘이대남’이 쥔 모양새다. 말이 잘려나간 자리는 ‘밈’(meme·인터넷에 퍼뜨리기 위해 연출한 이미지물)으로 채워졌다. 윤 후보가 멸치와 콩으로 몸소 시전했다. 밈의 순기능은 ‘풍자’다. 쓰..
풍자냐 자살이냐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대통령 선거에서 1인칭이 구호로 등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 싶다.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가 발표 직후부터 본질과 상관없는 저작권 시비에 휩싸인 것이야말로 이 구호가 경쟁자들을 얼마나 긴장시키는지를 시사한다. 몇몇 정치인들의 저작권 시비에 비해 트위터 타임라인에 등장한 풍자는 쓰든 달든 쾌미를 주지만, 그렇다고 파괴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풍자는 상대에 대한 힘의 열위(劣位)를 드러내야 하는 표현 양식이다. 그 약자가 자신을 꼿꼿하면서도 허허롭게 타자화할 때 풍자는 일어서지만, 힘에 있어서 상대를 압도할 수는 없는 것이 또한 풍자의 숙명이기도 하다.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라는 구호와 이에 대한 풍자는 보통의 그것들보다 훨씬 복잡한 관계를 구성한다. 문제의 구호는..
웃어야 산다 이 글은 2010년 송년호 ‘시론’으로 쓴 글입니다. 2010년을 보내고 2011년을 맞는 것과 관련해 글을, 그것도 ‘시론’이라는 문패로 써달라는 요청은 난감했다. 주례사의 심정도 이와 비슷하리라! 시인 김수영은 “누이야 풍자가 아니면 해탈이다”라고 읊었다(). 1961년 5·16 쿠데타가 발발한 지 석 달 뒤였다. 누구보다 4·19 혁명을 예찬했던 김수영에게 5·16은 믿기 어려운 참극이었음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대략 10년 뒤, 시인 김지하는 이 시구를 빗대어 “누이야 풍자냐 자살이냐”라고 썼다. 박정희의 폭압 정치가 극을 향해 내달릴 때였다. 두 시인 모두에게 ‘풍자’는 현실의 고통을 승화하는 기제였다. 풍자는 ‘비유’라는 표현 양식을 통해 ‘웃음’이라는 사회적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비유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