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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뿌리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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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란 민주주의’의 경고 네거리를 붕대처럼 휘감은 지방선거 후보자들의 펼침막을 바라보며, 1번과 2번 기호만 가리는 상상을 해봤다. 두 거대 정당 후보들의 소속을 전혀 분별할 수 없었다. 원칙대로 블라인드 테스트를 하면 면접관이 면접자의 학벌 따위 배경 자원을 알아챌 수 없듯이. 10음절 안팎에서 끝나는 구호들은 개발 지상주의의 정수라 할 만했고, 1번과 2번이 그걸 두고 일합을 겨루는 형세였다. 그러나 두 정당이 때 되면 ‘현명하다’고 칭송하는 유권자들은 잘 안다. 어느 쪽이 개발에 더 유능한지. 그날은 집주인이 별안간 직접 들어와 살겠다 해서 이사할 집을 보러 다니는 길이었다. 1기 새도시 중에 가장 싼 동네라는데도, 1년 반 만에 전셋값이 다락같이 올라 있었다. 그동안 급여 한푼 안 쓰고 모았어도 턱없이 모자랄 판이었다. ..
설계를 설계하라 ‘설계’는 대장동 사태의 열쇳말이다. 검찰 수사의 길잡이별이 ‘설계’임은 물론이다. 누가, 왜 수익 배분을 그렇게 설계했는지 사법적으로 특정하는 것이 검찰이 가려는 최종 목적지일 것이다. 인물로 치환하면 화천대유 3인방을 비롯한 토건-법조 카르텔을 경유한 뒤에야 나올 ‘윗선’일 것이다. 누구를 가리키는지는 물을 필요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예단을 가진 수사라고 단정하면 그 또한 섣부른 예단이다. 수사의 범주를 제한하다간 외려 성역 논란을 부를 수도 있다. 예단을 가진 수사와 성역 없는 수사는 기실 한끗 차이다. 문제는 의도성을 가진 수사인지 여부다. 그러할지 우려하는 시선과 그러하길 기대하는 시선 모두 탄탄한 경험칙에 근거하고 있다. 검찰은 그 우려와 기대 사이의 협곡을 통과해야 한다. 스스로 지은 업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