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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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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으로 평등해진 사회 ‘위험사회’는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1944~2015)이 정립한 개념이다. 산업화를 거친 현대의 특징을 ‘위험’의 관점에서 분석한 것인데, 작명이 썩 탁월해 보이지는 않는다. 현대가 위험사회면 현대 이전은 안전사회였나? 현대가 그 전 시대보다 확률이나 강도 면에서 더 위험해졌다는 뜻이 아니다. ‘인간에 의해 위험해진 사회’ ‘전지구적으로 위험한 사회’ ‘빈부 가리지 않고 위험한 사회’ ‘위험을 통계적으로 예측할 수 없는 사회’로 변했다는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더 나은 작명도 쉽지 않을 것 같긴 하다. 현대 사회의 위험의 형질이 어떻게 변했는지, 핵을 들어 짚어보자. 체르노빌 핵발전소 참사는 자연이 아닌 인간(의 과학기술)에 의해 일어났다. 발전소 인근인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를 넘어 모든 유럽 국가..
체르노빌, 셀카가 지운 목소리들 체르노빌 참사’는 1986년 4월26일 발생했다. 2019년 6월 현재 만 33년하고도 두달째인 이 애매한 시기에 ‘체르노빌’이 새삼 화제다. 미국 유료방송 채널인 (HBO)에서 5월6일부터 5주간 주 1회 방송한 동명의 미니시리즈 드라마가 인기를 누렸다는 소식에 이어, 드라마 인기에 힘입어 체르노빌 현지에 관광객이 몰린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전자는 ‘좋은 소식’, 후자는 ‘나쁜 소식’이다. 드라마는 역대 최고 시청률과 호평을 얻은 반면, 현지를 찾은 관광객 일부는 노출 심한 사진 등을 찍어 소셜네트워크에 올리는 ‘관종’(관심종자) 행위로 비난을 사고 있다고 한다. 비극적인 역사 현장을 돌아보며 그 의미를 되새기는 ‘다크 투어리즘’이 스스로 어둠(다크)의 일부가 된 현실은 아이러니하다. 체르노빌 희생자 ..
신종플루보다 무서운 것들 위험사회에서 위험을 인지 못하거나 과잉반응 하거나 독일학자 울리히 벡은 현대사회의 특성을 ‘위험사회’라는 개념으로 포착해냈다. 지금이 옛날보다 훨씬 위험해졌다는 뜻이 아니다. 적어도 현대 도시에서 길을 걷다 들짐승에게 잡아먹힐 위험은 사라졌다. 위험사회론은 위험을 통계적으로 예측·관리하고, 사후적으로 보상할 수 있다는 근대적 ‘믿음’이 더는 성립하기 어렵다는 통찰적 인식이다. 1986년 체르노빌 원자력 폭발 사고는 20년도 더 지났지만 아직까지 피해의 범위와 규모조차 확정할 수 없다. 체르노빌 사고에 대비한 보험 상품을 내놓은 보험사가 있었다면 오래 전에 망했을 것이다. 오늘날 역학(疫學)적 현상도 위험사회론의 그물 안에 있다. 본디 전염병은 색깔도 소리도 냄새도 없이 퍼지는 병이지만, 가장 빠르고 광범..